Where We Can Ride Together

우리가 함께 달려갈 곳

지난 8월 초, 전남 영암에서 열린 내구 레이스(오랜 시간 경주를 펼치는 레이스 종목의 일종) 대회 현장을 찾았다. 서킷을 달리는 모터바이크의 굉음,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대화하는 선수와 팀원들. 난생처음 듣는 소리와 풍경에 왠지 모르게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겁이 나 뒤돌아보니 다섯 살 된 꼬마가 자신의 자전거로 필살 기술을 선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K1 리그 시즌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모터바이크 레이스 팀 H-파워스 허진용 단장의 막내아들이었다.
자전거 타는 게 유일한 취미이던 여섯 살 소년은 아홉 살에 처음 모터바이크에 입문했다. 10대엔 오로지 세계적인 모터바이크 선수가 되고 싶은 꿈뿐이었지만 30대인 지금은 아홉 살, 일곱 살, 다섯 살 난 세 남매를 둔 가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모터바이크에 대한 애정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빠가 너무 재미있게 타서’ 세 아이는 아빠를 따라 쪼르르 모터바이크에 올랐고, 남편의 지독한 모터바이크 사랑을 보다 못한 아내는 차라리 함께 타자며 온 가족의 모터바이크 취미 선언을 해버렸다. 그저 모터바이크를 쓸고 닦고 진흙탕을 가로지르며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 시동이 꺼진 모터바이크 위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일곱 살 아들을 뒤로하고 소리 지르며 언덕을 내려오는 엄마, 이 모든 게 남의 일인 양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점검하는 아빠. 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진 다섯 식구를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모터바이크의 매력이 뭐길래 이 가족은 이렇게 푹 빠진 걸까?

선수 생활을 오래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모터바이크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999년부터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해 일본에서 2009년까지 11년 정도 했는데 선수로서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고 중간이었어요. 모터바이크를 처음 탄 건 아홉 살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고향이 경남 합천 시골인데 아버지가 우체국 국장이셨고 외삼촌도 우체부이셔서 집에 늘 배달용 모터바이크가 있었거든요. 외삼촌에게 배우며 연습한 게 첫 경험이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가 모터바이크를 타셨고,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배 속에 있을 때 두 분이 모터바이크로 전국 일주를 하셨다고 하는데 듣기만 했지 기억에 없으니까요. 기억하는 첫 모터바이크는 아홉 살이네요.

06-01

모터바이크를 타기엔 어린 나이인데 부모님은 걱정하지 않으셨나요?
별생각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지금의 도시처럼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도 아니니까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먼 길 심부름을 다녀오라고 하면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버스를 이용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게 미안하셨던지 자주 모터바이크를 타고 가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선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는 없었을 것 같아요. 보통은 반대가 심한 편이라는 이야길 들었거든요.
그건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도 반대하셨어요. 마음에 안 들어 하셨죠. 위험 부담보다도 장래에 대한 걱정이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뜻이 워낙 확고하니까 곧 포기 하셨지요. 그런데 주변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가족들 반대가 심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몰래 하는 분들도 있어요. 선수뿐 아니라 취미로 타는 일반 라이더들도 가족 몰래 타는 비율이 꽤 돼요. 아내와 다른 가족 몰래 숨겨놓고 타는 거죠.

06-02

가족들 반대에도 숨겨놓고 탈 만큼 매력이 있는 거겠죠? 모터바이크의 매력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가고 싶은 데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빨리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죠. 그런 자유로움과 스피드인 것 같아요. 차와 비교를 많이 하시는데, 차는 박스 안에 갇혀 있잖아요. 모터바이크는 직접 바람을 맞으며 타니까 훨씬 다이내믹하고 스릴이 있죠.

모터바이크를 아내와 세 자녀까지 온 가족이 타고 있는데, 그럼 그러한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 같은데요?
그런데 가족과 함께 타면 그 나름대로 재미가 또 있어요. 무엇보다 뿌듯해요. 예전부터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게 보기 좋았거든요. 아빠와 아이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잖아요. 저희 아버지랑 제 취미도 전혀 다르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취미가 농사예요. 농사가 취미인 사람이 있어요.(웃음) 가끔 저 혼자 즐기고 싶고 정말 달리고 싶을 때는 일하러 간다고 핑계 대고 몰래 다녀오기도 하니까 그런 부분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모터바이크를 가르쳐야겠다 생각한 계기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건 아니고 아이들 바람이었어요. 제가 타는 걸 보고 아이들이 타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아내도 저와 연애 초반에 모터바이크를 배워서 타다가 육아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쉬었는데, 아내도 다시 시작할 겸 가족이 함께 타면 좋겠다 싶어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뭐든 해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쳐보고 태권도 도장도 가고 싶고.... 그중 하나로 생각한 거 같아요. 아빠가 타니까 나도 타보고 싶다고.

피아노와 모터바이크를 동급으로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웃음).
아이들이 모터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후로 가슴 철렁한 순간은 없었나요?

지난주에 막내가 브레이크를 안 잡는 바람에 살짝 부딪쳤는데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이건 아내도 같은 생각인데 다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아이들은 공 차다가도 다치잖아요. 모터바이크는 제대로만 타면 크게 다칠 일이 거의 없어요. 안전을 위한 보호 장비를 다 챙겨서 타니까요. 제가 선수 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골절상을 딱 한 번 당했어요. 그것도 올해 들어서요. 그 외엔 한 번도 부러지거나 다친 적이 없었어요. 모터바이크가 위험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위험하지 말라고 안전 장비를 다 갖추고 타잖아요. 대비를 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차 같은 경우엔 절대 가족, 특히 배우자에게 배우지 말라고 하잖아요. 모터바이크는 어떨까 궁금하더라고요. 아내분과 아이들을 모두 가르쳤는데 동등한 자세로 가르칠까, 차이는 없을까? 하고요.
솔직히 아내는 1시간 중 59분 혼내고 1분 칭찬하며 가르치는 거 같아요. 준비가 안 되면 위험할 수 있는 스포츠니까 엄하게 가르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모터바이크는 기초를 제대로 다지고 보호 장비나 안전 규칙도 처음에 습관을 확실히 들여놔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겨요. 그래야 안전하게 오래 탈 수 있고, 위험 상황에서 대처 능력도 키울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무척 강하게 이야기하는데, 듣는 사람은 서운해하죠. 아내는 칭찬하고 칭찬받고 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거든요. 아이들에겐 칭찬도 많이 해주고 부드럽게 해요. 어차피 지금 엄하게 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이니까요. 막내가 다섯 살이거든요. 말귀 알아들을 즈음엔 똑같이 가르치겠죠.

아직 국내에선 모터바이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인 부분이 많잖아요.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SNS를 통해 보여주는 걸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 바꿔보려는 노력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희 팀 SNS는 아내가 관리해주고 있어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선수들 가족, 우리 아이들 외에도 어린 나이부터 모터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아이들 사진을 자주 올리죠. 모터바이크 문화가 발달한 나라와 우리나라를 비교해볼 때 가장 큰 차이는 라이더가 아니라 라이더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이에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모터바이크 하면 “위험하다, 죽는다, 폭주족이냐” 같은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이거든요. 모터바이크를 타는 자체로 사람의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고요. 그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희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안 좋게 보는 분이 많은 반면, 막연히 모터바이크를 타고 싶거나 모터바이크에 대한 로망을 가진 분이 생각보다 많아요.

모터바이크에 대한 로망을 가진 분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젊은 시절에 잠깐 모터바이크를 타다가 정년퇴직하고 다시 타기 시작한 60대 남자분이 있어요. 1년에 2만~3만km를 달렸더라고요. 유라시아 횡단도 다녀왔다면서 그분 사연을 듣는데,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어요. 저보다 돈도 많고 성공한 분인 것 같았지만 그 모든 걸 가장 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텐데 긴 세월을 참은 거잖아요. 모터바이크는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지만, 그분이 정말 하고 싶을 때는 이미 지난 게 아닐까.... 저도 한 달 정도 모터바이크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지금 당장 가고 싶거든요. 근데 이걸 60이 넘어서 한다고 생각하면 제 생각엔 눈물만 날 것 같더라고요. 여행하면서도요.

거의 평생 모터바이크를 탔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한 달 여행이 하고 싶은거군요.
개인적으론 그렇고요. 제가 속한 팀을 이끌고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 부분이나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당장 시도할 순 없지만, 더 높은 목표를 가지는 건 좋은 거니까요.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제가 레이스 팀을 꾸리고 국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낼 거란 생각은 안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어요. 아시아 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06-06

Lessons for fathers

허진용 가족이 말하는
아이들의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알려줘야 할 것

안전 장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세요.
헬멧, 글로브, 부츠, 가슴 보호대 등 모터바이크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선 챙겨야 할 보호 장비가 많아요. 덥고 불편하다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몸을 보호해주는 안전 장비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려주세요. 안전 장비를 착용하는 습관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길러줘야 해요. 어른이 되어서도 빼먹지 않도록 꼭 강조해주세요.

보조 바퀴, 속도 제한 장치를 사용하세요.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에게 보조 바퀴를 달아주듯이 모터바이크를 배울 때도 보조 바퀴를 달아주세요. 중심 잡는 연습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속도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아이에게는 속도 제한 장치를 꼭 달아주세요. 아무리 핸들을 당겨도 적정 속도 이상 나가지 않아 혹시라도 모를 사고 방지에 도움이 될 거예요.

탠덤 라이딩을 통해 쉽게 알려주세요.
라이딩을 처음 시작하는 어른도 핸들 조작법, 브레이크 잡는 방법은 어렵기 마련이에요. 가능하다면 아이용 모터바이크 뒷좌석에 어른이 앉아 탠덤 라이딩 교육을 해주세요. 어른 뒤에 매달려 곁눈질로 배우는 것보다 한결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아이가 이해하는 데엔 한계가 있어요. 핸들의 그립감을 익히고 브레이크 잡는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백번 말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될 거예요.

시선 처리 연습을 따로 시키세요.
시선 처리는 모터바이크를 탈 때 굉장히 중요해요. 위험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고 원활하게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해선 늘 멀리 봐야 하거든요. 라이딩 중 아이가 당황해서 고개를 떨구거나 시선을 내리까는 일이 없도록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멀리 보라고 일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