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Fear Growing Old

나이 듦이 공포가 되는 이유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을 막론하고 나이 드는 걸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단순히 싫거나 피하고 싶은 정도를 넘어선다.

무겁지만 직시해야 할 현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다. 노인 인구 비중이 14%인 고령 사회에 근접했고, 2026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노인이나 노년을 준비하는 중·장년에게 늙음이 일종의 공포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몸이 허약해지고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혹은 자녀가 독립하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불안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절박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언론에서 종종 접하는 각종 지표가 이를 반영한다.
노년기 불안과 우울 증세만 해도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노인이 느끼는 불안 수준이 10점 기준에 5.6점으로 높게 나타나며,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은 6.0점으로 더 높다. 노인 3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외국의 경우 노년기를 전후해 우울증 빈도가 줄지만 한국은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가족 유대 관계가 약화되는 것도 두려움에 한몫한다. 65세 이상의 1인 가구는 전체 고령자 가구의 32.9%를 차지한다. 노인 가구 중 3분의 1이 혼자 살며, 독거노인의 우울증 비율은 44%에 이른다.
노인 자살률 또한 기록적이어서 OECD 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10년이 훨씬 넘도록 연속 1위다. 국내 전체 자살률의 2배 이상이고, OECD 평균에 비해 무려 5배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다. 지난 10여 년 동안 노인 자살률은 3배 이상 뛰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도로 빠른 속도다.
자살하는 노인이 많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평소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고, 나아가서는 아직 자살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든지 그런 고민을 할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인이 상당히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고통이라면 불행, 그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상태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나이 들어가며 세월의 무게가 내리누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단순히 싫거나 피하고 싶은 정도를 넘어선다. 노년을 맞이했거나 점차 가까워지는 상태가 공포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10-08-01

왜 한국에서 노년이 더 불행할까?
한국에서 노년은 육체적 상실감 이전에 아예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나아가서는 정신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공포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이중·삼중으로 덧씌워져 있다. 먼저 빈곤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노인 빈곤율이 49.6%로 OECD 1위라는 소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OECD 평균의 약 4배다. 75세 이상으로 좁히면 60%에 육박한다. 빈곤율 비율이 상승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5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61%다. 청장년 시기에 빈곤 상태에 있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무직이라 해도 노후를 대비할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30세 가까이에 취업을 하고, 사기업은 50대 초반이면 퇴직해야 한다. 고작 20년 사이에 내 집 마련과 생활비는 물론이고 자녀 교육비까지 허덕이다 보면 제대로 노후 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정규직 은퇴자는 퇴직금과 알량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 즉 평균임금에 대비해 받는 돈은 25%에 불과하다.
워낙 다수가 빈곤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노인은 일하길 원한다. 여기에 일을 해야 노인이 행복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통념까지 작용한다. 통계청에 의하면 고령층 인구의 60% 이상이 장래에 일하기를 원한다. 남성 노인의 경우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경비원이다. 빈곤층 노인은 닥치는 대로 일한다. 공공 근로에 나갈 수 있다면 그나마 행운이다.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노인이 막바지에 선택하는 일은 폐지 줍기다.
경제적 형편과 별도로 노년을 공포로 여기게 만드는 요인은 삶의 목적이나 의미의 상실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살아가는 이유나 의미가 없어졌을 때 그 어떤 경우보다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매일이 무료하고,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현재 한국의 대다수 노인은 자식이 있든 없든, 자식과 함께 살든 아니든 전반적으로 가파른 세대 간 단절과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퇴직 이후 역할 부재로 인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TV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워야 하는 처지다. 손주와의 긴밀한 관계도 옛말이 되어버렸으며, 사회나 가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찾기 어렵다. 마음의 위안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해온 배우자와의 관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황혼 이혼이 빠르게 증가해 전체 이혼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노년은 우리가 미래에 당도할 곳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노년을 더욱 큰 공포로 느낄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이 일상을 짓누르는 형국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노년에게 닥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정하고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가? 노인에 국한된 문제로 치부하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면 되는가? 노인은 물론이고 중·장년층을 위해서도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노인이 우리의 미래이고, 오늘의 노인이 행복할 때 내일의 우리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노인의 고통을 부양을 둘러싼 경제문제로 한정하고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개인적 대책에 초점을 맞춰왔다. 정부나 상당수 노인 단체에서 노인 일자리 창출이 노인 대책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일을 해야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기에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는 논리로 뒷받침한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사정을 당장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게 중·장기 대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하는 노인의 57.4%가 최저임금 시급 이하를 받는다. 왜곡된 고용구조 속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이 강제된다. 일을 해야 자존감을 찾고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진다는 견해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 한국의 노인 고용률은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지만, 동시에 자살률 1위라는 지표는 자존감을 높인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일차적으로 복지 차원의 사회 대책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유럽의 노인 빈곤율이 5% 내외로 매우 낮은데, 상당 부분 공적 연금 덕분이다. 한국은 현재 가입 기간 10년 이상인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연금액이 5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기초연금도 열악해서 OECD 18개 국가가 상시 노동자 평균 소득의 20%지만 한국은 6%에 불과하다. 노인이 생존의 벼랑으로 몰리지 않도록 적어도 최저 생계비만큼은 공적 연금을 비롯한 복지 차원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삶의 목적과 직결되는, 의미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 노인의 능동적 역할을 손주 양육처럼 다시 가정에 가두는 방식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살려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대안적 방향 중 하나다. 역할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역할이라 하면 인간관계 속에서 생산적 의미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구에서 온다. 그런데 청년에서 장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부분 의미 있는 관계를 직장과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적 영역에 몰두하는 것에서 찾았다.
그동안 사적 영역에만 몰두하느라 도외시해온 방향에서 의미의 일부를 찾는다면 노년이 새로운 경험과 설렘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개인을 넘어서 지역이 됐든 사회 전체가 됐든 공동체로 시야를 확장하고, 그 안에서 역할을 찾을 때 자존감도 높아진다. 지역의 자그마한 봉사 단체일 수도 있고, 공공성을 중시하는 시민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특정한 정책과 관련한 사회단체 활동도 가능하다. 평소 소신에 따른 정치 활동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인생은 그저 오늘을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저절로 찾아오는 운명론적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기쁨은 어려움을 참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다. 노년기는 여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이어야 한다.

10-08-02

박홍순

인문학·사회학 작가로서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일상의 통념을 깨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활동을 해왔다. 저서로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 《미술관 옆 인문학》, 《옛 그림 인문학》, 《헌법의 발견》, 《장자처럼 살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