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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 Issue 16. 필환경 생활

나의 불완전한 비건 도전기

My Incomplete Vegan Journey

  • 2020.05.19
  • Writer. 유원진

채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의 건강을 위해 비건이 되겠다고 선언한 한 40대 아빠의 비건 도전기.

채식을 시작하다

지금까지 총 두 번의 채식을 시도했다. 처음 채식을 시도한 건 10여 년 전인데, 계기는 나의 건강 문제였다. 그 문제란 20대 초반부터 나를 줄곧 괴롭히던 지루성피부염으로, 얼굴과 두피에 여드름처럼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차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질환이다. 특히 두피는 모근이 파괴되어 탈모로까지 이어졌기에 큰 스트레스를 받던 터였다. 20대 후반,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시작하고 연애 시장에서 짝을 찾기 위한 처절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점에 피부병으로 인한 탈모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스테로이드성 약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 뿐, 한약이나 민간요법도 모두 소용없었다(심지어 오줌으로 세수도 해봤다). 정확한 원인은 병원에서도 모른다고 했으나 스트레스나 두피의 열 혹은 과도한 피지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글에서 기름기가 많은 음식과 유제품이 피지선을 자극해 피지 분비를 더 왕성하게 만든다는 정보를 접하고, 지긋지긋한 염증을 치료해볼 생각으로 채식을 시도하기로 했다. 딱 두 달간 했다. 당시엔 딱히 비건에 관한 전문 용어나 지식이 없었다. 단지 내 건강을 위한 개인의 작은 몸부림이었다고 할까. 어쨌든 당시 달걀과 생선은 먹었기 때문에 완전한 비건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해산물은 먹지만 고기는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정도였다.

두 달간의 채식 후 피부염이 호전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왜 채식을 그만두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한다. 몸무게가 단기간에 7kg이나 빠진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반길 일이겠지만, 어릴 적부터 타고난 멸치 몸에다 머리가 커서 ET형 몸매가 늘 콤플렉스이던 내게 급속한 체중 감소는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고기와 유제품 등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먹기 시작했다. 피부가 깨끗한 멸치보다 피부염이 있더라도 살집이 있는 듬직한 남자다움을 선택했다.


채식을 다시 시도하다

나의 두 번째 채식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채식에 도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처음 채식을 시도했을 때처럼 외모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여전히 지루성피부염으로 고통받고 있는 데다(정말 끈질긴 놈이다. 평생을 이놈과 함께 살아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깨끗한 피부에 대한 열망에 건강하고 섹시한 몸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더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머리숱과 흰머리, 늘어나는 주름살과 뱃살로 인해 거울 속 내 모습은 영락없는 아재 실루엣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늙음’에 대한 반발 심리와 내 안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운동으로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과감하게 1년 회원권을 등록했다. 평일엔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운동했다. 일과 중에는 수시로 닭 가슴살과 단백질 파우더 등 근육을 단련하는 데 필수라는 단백질을 강박적으로 입에 집어넣곤 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무리가 왔다. 몸무게는 불고 몸은 커진 것 같은데 소화기관에 부담스러운 고기, 유제품을 많이 먹었더니 항상 속이 더부룩하고 잠도 잘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천근만근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채식하면서 몸을 만들 순 없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건 운동선수가 제법 있는데, 심지어 몸도 아주 좋았다. 그래서 바로 식단 변경에 돌입했다. 평소 운동 후에 먹던 닭 가슴살 대신 두부를, 단백질 파우더 대신 미숫가루를 먹었다. 간식으로는 우유 대신 두유를 마셨고, 버터가 들어간 빵 대신 떡이나 고구마를 먹었다. 그랬더니 불과 일주일 만에 2kg 정도 감량되었고 뱃살도 조금 들어갔다. 무엇보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더니 턱선이 살아나고 제법 멋있어졌다며 뜨거운 눈길을 보내곤 한다. 애써 아내의 눈길을 피하지만, 기분은 은근히 좋다.

가장 우려한 점은 단백질을 먹지 않으면 근육이 순식간에 빠져서 다시 멸치 몸매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근육 손실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무조건 고기를 먹어 단백질을 섭취해야 근육이 생긴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축산업과 낙농업계, 그리고 단백질 보충제 산업의 마케팅과 거대한 로비로 인한 엉터리 논문에 농락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육식과 환경의 부정적 상관관계를 알고 나서부터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고 전교생이 3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친구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천지에 널려 있는 들과 산이 곧 내 친구들이었다. 내가 사는 조그마한 동네에서는 개와 고양이는 물론 염소와 닭, 소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언제나 말없이 나를 반겨주는 자연과 동물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갈수록 파괴되는 지구환경과 인간의 탐욕으로 사라지는 동식물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제법 적극적으로 기사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니 축산업과 낙농업이 온실가스 배출과 산림 파괴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영상을 통해 본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최소한의 윤리도 없이 번식하고 키우고 도축하는 동물들의 절망적 삶과 인간의 잔인함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지구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산림을 파괴하는지,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등 현대의 축산업과 낙농업 등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경각심을 지니면서 채식의 당위성을 찾게 된 것이다.


채식 일주일 만에 찾아온 위기

이렇게 나의 삶과 몸에 대한 긍정적 변화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채식을 다시 시도했지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나의 채식 도전에 적극 협조하겠다던 아내는 이미 사놓은 닭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닭을 구웠다. 안 먹겠다고 했지만, 올리브유를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닭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그 이후로도 아내는 닭볶음탕이나 고기가 들어간 카레 등을 요리하며 “진짜 고기를 안 먹을 거냐”며 나를 유혹했다. 조금은 비협조적인 아내 대신 내가 직접 식자재를 사서 요리를 한다. 하지만 집 안에서 하는 모든 요리를 나 혼자서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요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고기 없이 요리하려니 메뉴가 한정적이라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요즘 채식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기를 먹는다. 얼마 전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데 나 요즘 채식한다고 했더니 “웬 호들갑이냐”, “도대체 몇 살까지 살려고 이러냐”, “친구들 다 죽고 혼자 벽에 똥칠하며 살 거냐” 등등 갖은 타박을 들은 후 결국 다수결 원칙에 의해 초밥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채식하면 젓갈이나 멸치 육수가 들어간 음식들, 김치도 먹으면 안 되지 않냐고 아주 공격적이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날 무너뜨릴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았다. 더군다나 채식으로만 식단을 바꾸려니 식비도 많이 든다. 신선한 채식 식자재는 특히 유기농이라면 더욱 비싸고 요리 방법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채식 이후로 성공한 날보다 실패한 날이 더 많이 쌓여간다.


바보야, 문제는 환경이야

그런데 채식을 하면 지구환경이 지금보다 나아지긴 하는 걸까? 오늘부터 당장 풀떼기만 먹는다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온도가 낮아지는가 말이다. 비교적 진보적 과학자와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어떤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엄청난 재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또 어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활동과 기후변화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다며 여전히 개발과 성장을 외친다.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우리의 탐욕대로 계속 자원을 고갈시키고 난개발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향’이라는 느낌은 확실하게 든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내가 자란 시골 동네도 어릴 적 내가 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로 노인들이 거주하는 곳인데, 자가용도 없는 그분들에게 이장은 끊임없이 동네에 도로 확장이 필요하다며 산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도록 만든다. 마을 입구에는 어느새 고속도로가 생겼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도 개인과 기업의 크고 작은 개발욕과 토목업자의 로비로 난개발이 계속되는데, 국가적·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그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례로 브라질의 아마존을 보라. 극우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된 뒤 아마존은 짧은 시간에 한반도 면적의 11배에 달하는 밀림이 불탔고, 아직도 불길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 불길은 목초지 개발 정책을 위해 정부의 힘을 얻은 채 꺼지지 않고 있다.모든 게 성장과 돈때문이다.


왜 선언이 아니고 도전인가

개인의 노력으로 지금의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의 생존 자체가 반환경적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먹고, 쓰고, 소비한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우리의 생존은 환경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실제 필요보다 너무 많이 소비하고 너무 많이 파괴하고 있다.

우리 개개인의 관심이 커져서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시민이 반환경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고, 윤리적으로 기르고 생산한 고기를 먹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와 과일을 더 먹는 운동을 한다면 정치권과 정부도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환경 공약을 주장할 것이다. 게다가 환경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에 지원금을 쓰는 등의 법 제정으로 우리는 좀 더 안전한 친환경적 제품과 음식을 더 저렴하게 구매하고 먹을 수 있는 선순환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비건에 도전한다. 아마도 내가 열매와 채소만 먹는 완전한 채식을 실천하는 완벽한 비건이 되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비건을 선언한 후 실패한 날이 더 많이 쌓여가지만, 최대한 공장식 축산으로 탄생한 제품을 먹지 않고 환경을 생각한 먹거리를 선택한다면, 내 주변부터 조금씩 영향을 받고 변하지 않을까. 우리의 이런 작은 시도가 모여 거대한 움직임을만들수있다면도전자체만으로도가치있는일이될것이다.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장에 목매던 것처럼 우리와 우리 후손은 앞으로 생존에 목매야 할지도 모른다. ‘나 하나쯤이야’, ‘내가 죽을 때까지는 괜찮겠지’, ‘설마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겠어’ 등의 생각은 이제 그만 내려놓자.

자, 이제 나와 함께 비건에 도전할 사람을 모집한다.


유원진

평범한 직장인이자 소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 〈울산저널〉에서 ‘아빠 일기’를 연재하면서 철없는 아빠가 직면하는 세상 모습을 솔직하게 기록한다. 그 언젠가 아이가 성장해 독립했을 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지 고민하면서 비건이 되고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한다.

  • 2020.05.19
  • Writer. 유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