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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s — Issue 15. 부부위기

84년생 황시현

Hwang Sihyun, Born 1984

  • 2020.03.16
  • Writer. 강승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어느 장면에서 아내가 울었다. 그런 아내가 수상해서 나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영화 속 이야기라고 하기엔, 내 주변 ‘84년생 황시현’의 이야기가 또 그랬다.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가 어느 날 덜컥 가출을 했다. 남편에게 회사고 뭐고, 엄마 없는 동안 애를 보라는 시위였다. 그날 남자는 회사에 여차저차 급한 핑계를 대고 결근했다. 여기까지는 예고편이었다. 육아휴직을 써라, 워라밸이 가능한 곳으로 이직해라, 그것도 안 되면 차라리 전업해라, 밥벌이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여자는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업 구상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홀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다시 남편은 회사에 여차저차 궁색한 핑계를 대고 연차를 썼다. 아내가 사업 구상을 하는 사이, 남자는 전업 아빠의 시간을 보냈다. 아들과 단둘이 예정에 없던 일주일을 지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맞기 전까지는.”

핵주먹에 맞았다. 결혼 1년 차 명절 때 시댁에 들른 아내가 눈물을 덜컥 쏟았다. 친정에는 못 가고 시댁에 있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남편의 가슴이 철렁했다. 결혼 6년 차에는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다. 어디서 굴러온 ‘며느라기’ 탓에 본가와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고향 집에 계시는 할머니는 말은 못 하고 손자가 이혼한 줄 알았다. 아내는 직장 동료들과 〈마더티브 Mothertive( Mother+Narrative 의 합성어: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에게 공감과 위로, 대안을 제시하는 매거진)〉를 시작했다. 최근 창업 동료들과 이런 책을 출간했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임신 출산 육아의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여자가 쓴 서문은 이렇다.

“집에서는 독박 육아, 집 밖에서는 맘충 혐오로 경력 단절 엄마에게 육아의 모든 부담을 지우는 한국 사회에서 엄마라는 직업은 분명 극한 직업이다. 우리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도 중요하다.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킬 수는 없을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남자는 퇴사했다. 그리고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작은 회사로 이직했다. 명절 보이콧 이후 가족과는 교류가 끊겼다가, 차츰 각자의 방법으로 회복하는 중이다. 남자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고 말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속성상 앞으로도 엄청난 위기가 앞을 가로막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남자의 마음 한구석에 이 같은 질문이 남아 있지 않을까. “위기의 남편은 누가 돌봐주죠?”이 이야기의 주인공 황시현·홍현진 부부를 만났다.


‘부부 위기’라는 주제로 뵙게 됐네요. 가족들이 이 인터뷰를 볼 수 있고, 당신을 알아보는 사회적 시선도 있을 텐데, 이런 내용으로 나가도 괜찮을까요?
(시현) 누구나 다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 이야기라는 점에서 괜찮아요. 다만, 우리 부부의 위기가 지금은 소강상태지만, 다시 휘몰아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드네요. 제 시점에서 공동육아 비율은 5:5 정도 돼요. 아내의 핵주먹에도 맞아봤고, 지금은 워라밸에 신경 쓰며 살거든요. 직업 특성상 겨울에 일이 몰릴 텐데, 그때 다시 위기가 오지 않을까, 미리 걱정이죠.

최근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와 관련한 설문 조사를 봤어요. 남성의 32%가 출산 양육 부담을 비혼 이유 1위로 꼽았고, 여성은 26%가 개인의 삶이라고 답했어요. 결과를 보고 남녀의 생각이 바뀐 게 아닌가 하고 조금 놀랐습니다. 엄마, 아내가 아닌 ‘나’를 찾는 여성의 맞은편에 육아 부담이 커진 남성이 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5:5의 균형이라면 이 시대의 남편감이에요.(웃음)
(시현) 매일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요. 집에서 거의 모든 요리를 전담합니다. 일하는 아내의 도시락 싸는 일도 제 몫이고요. 부부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해야 하는 기타 등등의 일을 열심히 쳐내며 살고 있죠.
(현진) 본인은 남편 중에서 상위 0.0001%는 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글쎄요, 제가 보기엔 여전히 평균 이하예요. 그건 이제까지 세상의 기준일 뿐, 우리(요즘 아내 혹은 엄마)가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에는 여전히 못 미치잖아요. 지금까지 남자들은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받는 세상에서 살았어요. 남편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편 vs 아내의 역할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기준은 공평하지 않죠.


84년생 황시현
이 부부를 만나기 전에 준비한 질문 중 하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 을 봤느냐”였다. 영화가 워낙 관심을 많이 받기도 했고, 나와 아내가 최근에 그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화는 아내가 보자고 했고, 나는 속으로 〈조커〉를 보고 싶었다.
나는 먼저 소설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아내, 엄마로 살아가는 이 시대 여성의 속마음을 마주하니 뭐랄까, ‘불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힘든 내면을 마주하는 일엔 여유가 필요해서인지,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뭘” 하며 가볍게 넘기고 싶어서인지, 조금은 답답했다. 수많은 ‘82년생 김지영’의 반대편에 아직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는 세상이 있다. 아내는 영화 후반부 어느 대목에서 울었다. 나는 차마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는데, 그때 나도 살짝 눈물을 훔쳤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나의 아내는 ‘나’ 중심으로 사는 여자다. ‘82년생 김지영’ 같은 여자가 아닌데, 그런 아내가 훌쩍인 것이다.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짐작하면, 아내를 데려오면서(아, 시대가 어느 때인데 데려온다는 표현을 쓰다니. 나는 75년생 올드보이다) 그 여성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따님 손에 물 묻힐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오래된 농담이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여자는 매일 물을 묻히며 살고 있다. 단 한 번도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흔한 말을 한 적이 없으니, 그만큼 미안했던 것일까. 새삼 가당찮은 고백성사 같지만, 한 남자를 만난 한 여자의 삶을 생각하면 그랬다. 인연 혹은 운명 같은 달콤한 단어의 유효기간이 끝났을 때, 우리는 어떤 마법 같은 주문에 기댈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거나, 여전히 불편하다면, 모두 마법을 잃은 자의 아픔일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보셨나요?(웃음)
(시현·현진)아직 못 봤어요. 맞벌이에다 번갈아 양육하다 보니 영화 볼 시간을 못 냈네요.

영화는 부부 관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내이자 엄마 이전에 ‘나’를 찾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요. 두 분 사이에서 공평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현진) 우리 둘 다 부모는 ‘처음’이잖아요. 결혼하니까 다르고, 애 낳으니까 또 상황이 달라요. 남자는 오랫동안 남자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권리를 누렸다는 걸 잘 몰라요. 한쪽의 권리가 지속되면, 결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없잖아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대사가 생각나는군요. 아들이란 이름으로 누려온 그런 사회적 권리를 말하는 거겠죠. 그래서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기로 하겠다는 ‘필요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거네요. 첫 번째는 워커홀릭 남편에 대한 육아휴직과 퇴사 요구였죠.
(시현) 사실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고,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픈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아내가 지금의 삶은 올바르지 않은 것 같다고, 다른 방향을 찾자고 하니까 결국 고민 끝에 퇴사를 하게 됐죠. 지금은 이전 회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요즘 말로 ‘워라밸’이 가능한 곳으로 이직했어요. 뭐랄까, 마초적 시장에서 거두는 성공보다 모성적 시장으로의 귀환을 선택한 셈이죠.

회사엔 퇴사 이유를 뭐라고 했나요?
(시현)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아내가 힘들어한다, 그래서 그만둬야겠다.

회사의 반응은요?
(시현) 반반이랄까요.... 만류하는 쪽도 있고, 시대 분위기가 그러니까 동의하는 쪽도 있고요.

리처드 도킨스의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는 “모든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편을 구출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구출하고 싶었다’로 읽히는데요.(웃음) 남편이든, 자신이든, 서로 구출한 뒤 얻은 게 있나요?
(시현·현진) 음, 아이 아빠가 된 거죠. 엄마 편이던 아들이 아빠 껌딱지가 됐거든요. 아들과 아빠의 관계를 회복했어요.


여자의 사회적 꿈은 기자였다. 한때 오마이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그 방면으로 계속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그러나 독박 육아가 시작되면서 커리어를 쌓기 힘들었다. 아내는 일만 하는 남편을 ‘회사 노예’라고 불렀다. 한때 남편의 야근 행렬이 계속될 때는 그까짓 거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위안 삼아 들른 맘 카페에서는 다들 남편을 돈 벌어오고 집에서는 잠이나 자는 사람, 철없는 아들 취급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했다.
아이가 독감에 걸렸을 때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본 건 자신이었다. 어린이집 수첩에는 온통 ‘엄마’만 있었다. 선생님은 엄마에게만 연락했고, 모든 일의 주체는 엄마였다. 아빠는 어디 있지? 이상한 일이었다.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면 나랑 그만 살자”고 선포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남편은 다른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이직하기 전에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제안했다. 그런데 불안했다. 남편 회사 직원이 2000명 넘는데 육아휴직 냈다는 남자를 찾기 힘들었다. 누가 육아휴직을 내긴 했다는데,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괴소문도 돌았다.
그런데 남편을 포기하려 할수록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남편을 돈만 벌어오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 슬픈 일이었다. 남편을 구출하고 싶었다. 여자는 이런 글을 브런치북에 연재했다. 〈엄마의 퇴사〉라는 연재의 11화 제목은 ‘남편을 구출하고 싶었다’였다.

기울어진 운동장
불공정한 사회를 뜻하는 익숙한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다.한쪽 골대 방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얘기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운동장 기울어진 것은 외면하고, 더 빨리 뛰라고 주문한다. 아무리 날고 기는 메시여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스타플레이어가 되기 힘들 것이다. 부부 관계라는 운동장은 명절이 되면 특히 더 기울어진다.

결혼 6년 차, 아홉 번의 명절을 보낼 때마다 우리 부부는 싸웠다. 시댁과 친정은 거리가 멀어 둘 다 가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더 그랬다. 친정 부모님은 힘든데 뭐 하러 명절에 오냐며 괜찮다고 했다. 신경 쓰지 말라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시댁 식구들과 함께 웃고 있는 아이 사진을 보며, 언젠가 친정엄마는 쓸쓸하게 말했다. “너네는 명절 기분 나서 좋겠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명절에는 당연히 시댁 먼저 가야 하는 걸까? 왜 나는 눈치 보며 시댁 부엌을 서성대야 하는 걸까? 왜 친정 부모님은 딸을 가졌다는 이유로 손주와 함께 화목한 명절을 보낼 수 없는 걸까? 명절은 설명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결혼 6년 차, 명절을 보이콧하다(〈마더티브〉 홍현진)


제 얘기 같기도 하네요. 저는 고향이 멀고, 아내는 서울이라 명절에는 처가에 들르는 경우가 많죠. 마음은 고향 앞인데 ‘물리적 거리’ 때문에 아내에게 ‘시댁 먼저’를 강요하진 않아요. 어머니는 자식 몸 피곤하다며 오지 말라고, 괜찮다고 하시는데,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속상하죠. 본가에 자주 못 들르니 명절 때라도 들렀으면 하는 보상 심리도 있겠죠. 아내가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지만, 글쎄요, 명절만 따지면 이 또한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제가 결정한 일이니 그만이라고 생각하죠. 단순히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의 문제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명절’이라는 특수성이 크죠.
(현진) 처음엔 그랬어요. 저만 참으면 다들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고. 며느리로서 도리는 알지만, 명절에 시댁에 있으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죠. 친정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그러면 눈물이 났고요.
(시현) 고향에 할머니가 계세요. 그래서 할머니 계실 때까지는 좀 참고 살자, 하는 얘기를 했거든요. 명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죠. 명절에 들르지 않으니까, 할머니가 말은 못 하시고 우리가 이혼한 줄 아셨대요.

부부가 되면 둘의 관계를 넘어 가족 관계로 확장되잖아요. 아들은 장가가면 남의 집 자식이란 말이 있지만, 그래서 명절 같은 날에라도 아들 역할을 하고 싶잖아요. 사실 명절 보이콧은 아들에게는 선을 넘은 행위일 수 있어요. 평등이라는 게 시댁 한 번, 친정 한 번, 이런 단순한 문제는 아니잖아요. 어떤 심정으로 아내의 ‘명절 보이콧’을 받아들였나요?
(시현) 이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하니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사람을 선택했고, 우리는 결혼했고, 가족을 꾸렸고, 같이 살기로 했으니까, 선택했으니까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시쳇말로 어디서 우리 집안에 이런 며느리가 들어와서, 이런 막장 드라마가 될 수도 있잖아요. 명절 보이콧 이후 한때 부모님과의 관계가 단절됐다고 들었어요. 자식 입장에서 난감하죠. 한편으로 아내도 선택한 관계잖아요. 난 포기하는데, 그럼 아내는 뭘 포기하는 거지, 이런 씁쓸한 마음은 안 들던가요?
(시현) 자식 입장에서는 그만큼 불편을 안고 사는 거죠. 부모님 세대가 가진 생각이 있는데, 시대가 변했다고 쉽게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내 속을 다 드러내고 살 수는 없어요. 적당히 숨기며 사는 거죠. 그 위기를 겪을 때는 손주를 자주 보게 해드렸어요.
(현진) 결혼 전에는 이런 일을 생각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다를 거라고, 부모님도 다를 거라고 기대하니까요. 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그렇게 마음먹기까지 6년이 걸렸으니까요. 미움받을 걸 감수하고 그런 말씀을 드린 거죠. 아내, 며느리로서 마음이 편할 리 없지만, 저는 계속 가면을 쓰고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니까요. 세상에 쉬운 변화란 게 있을까요?
(시현) 남들 사는 것처럼 익숙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게 안 됐죠.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자기 할 말 하는 아내 말고 순종적인 여자를 만났으면 내가 행복했을까? 그건 절대 아니거든요. 아내와 아들, 나, 이렇게 셋을 중심에 두는 삶에 집중하고 싶어요. 요즘엔 부모님이 먼저 말씀하세요. “현진이는 바쁘니? 바쁘면 굳이 안 들러도 된다”라고. 계속 불편한 것보다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쪽을 선택하신 것 같아요. 요즘엔 두 분이 여행 가는 횟수가 늘었어요.

부부의 위기를 극복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시현) 연애할 때부터 시시콜콜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작은 문제든 큰 문제든 서로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냈죠.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니까 정말 큰 위기는 막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내들은 남자들에게 뭐가 그리 불만인 걸까요.(웃음) 남자들이 절대 권력 같은 걸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늘 같은 남편은 생각지도 않으니까요. 요즘 세상은 남자들이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억울하진 않나요?
(시현)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가족을 지키는 것, 자식 잘 키우는 일이겠죠.

남자의 오래된 ‘아빠 혹은 가장 DNA’는 여전한 것 같네요.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남편이나 아빠라는 역할 대신 ‘나’를 중심에 두고 하고픈 일은 없나요?
(시현)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요리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바빠서 학원을 마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뭘 생각해도 예전만큼 재밌지가 않네요.
(현진) ‘위기의 남자’네.(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는 가족일까요?
(시현) 헤어지면 못 살 것 같은 사람과 버티며 살고 있으니 가족이 분명하죠.
(현진) 20대 초반에 만나 연애 8년, 결혼 7년 차예요. 나란 사람은 결혼이라는 제도와 안 맞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15년간 함께했으니 ‘탈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탈혼’을 생각한 적도 있어요.
(시현) 가족이라는 이름은 끝장을 보면서 맞춰가는 관계잖아. ‘탈혼’의 탈 자 같은 건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야. 한쪽을 약자로 만드는 단어는 피하자.


나는 ‘탈혼’이란 단어가 나쁘지 않았다. 이혼이란 단어는 무겁지만, 탈혼은 적극적이고 경쾌한 느낌이다. 남남이 되자는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사람 몸 무겁게 하는 결혼 제도로부터 탈출! 아직은 허구라도, 필요한 꿈은 계속 꾸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아는 한 남자와 가장 가까운 여자는 둘이다. 아내와 엄마. 최근 들은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밤늦게 집안일을 하던 엄마가 나지막이 한 혼잣말을 형이 들었다. 전해 들은 늙은 엄마의 혼잣말은 이러했다.

“아이고, 고달프다, 고달프다, 내 인생아.” 엄마의 혼잣말에서 한 여자의 인생이 읽혀 가슴이 짠했다. 또 한 명, 나의 아내는 이런 혼잣말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강승민

잡지와 출판 에디터로 인생 전반전을 살았다. 인생 후반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새 직장을 찾았고, 지금은 대형 마트에서 피자 굽는 일을 하고 있다. 마흔통을 겪는 시기, 가회동 집사 빈센트를 만나 ‘어른의 쓸모’를 생각하게 되었고 《쓸모인류》라는 책을 썼다. 지금은 무엇보다 커가는 딸에게 쓸모 있는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

황시현·홍현진

84년생 동갑내기 부부. 둘은 20대 초반에 만나 8년간 연애했고, 현재 결혼 7년 차다. 4세 아들을 뒀다. 부부 이름 가운데 공통된 글자인 ‘현’을 소중하게 담아 아들 이름을 지었다. 남편 황시현은 이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발간하는 문집에 스스로를 위기의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그 글을 쓰게 한 사람은 아내였다.
  • 2020.03.16
  • Writer. 강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