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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 Issue 18. 오늘의 패션

세상을 향한 태도, 패션

FASHION: A WORLD VIEW

  • 2020.11.16
  • Writer. 박세진

남과 다름을 뽐내기 위해 남과 같은 걸 두르고 같은 몸매를 만들며 안정감을 찾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언급하고 싶은 몇 년 전의 패션쇼가 하나 있다. 바로 발렌시아가의 2018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이다. 이 컬렉션은 패션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는 아버지 나이대 남성의, 일과가 끝난 후 여가 시간 모습을 패션으로 풀어낸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경우도 있고 전통적이지 않은 형태의 가족도 있다.

하이 패션은 이뤄질 수 없는 이상을 향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상은 때론 엄격한 모습을 하고 때론 방종한 모습을 한다. 사실 내용이 뭔지는 크게 상관없다. 패션 브랜드가 그런 세상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완벽하고 정교하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지의 힘은 매우 강력하고 사람들은 현혹된다. 심지어 어떤 이미지는 한 시대 전체를 움켜쥐기도 한다.

아무튼 고급 패션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치 잘하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뤄질 수 없기에 욕망을 끝없이 자극할 수 있다. 혹시나 누군가 그런 꼭대기 지점에 도달한다고 해도 패션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기 마련이다. 벌써 예전의 그것들은 촌티 나는 구식이 되어 있다.

그러나 발렌시아가의 2018년 패션쇼는 지금까지 패션이 이야기해오던 것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회사에서는 매장에서 주는 대로 비즈니스 슈트 같은 걸 제대로 갖춰 입는다고 해도 일이 끝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옷이 자아내는 구속에 쾌감을 느끼는 이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개는 불편하고 답답한 옷 따윈 어서 벗어 던지고 싶다. 휴식도 필요하고 아이와 산책도 가야 한다.

이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남성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고급 남성복 패션의 세련된 멋, 딱 맞게 떨어지는 핏, 정확한 길이, 고급스러운 소재, 완벽하게 갖춰진 세트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셔츠에는 주름이 져 있고, 블레이저는 지나치게 크고, 청바지는 어딘가에 잘못 보관한 것처럼 애매하게 물이 빠져 있다. 사이즈가 맞아 보이는 것 또한 하나도 없다.

혹시 패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해도 분명 기존에 머릿속에 들어 있던 패션의 세상과는 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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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패션의 규칙이 무의미해지고, 달라지고 있다는 현재의 상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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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컬렉션은 발렌시아가만의 도발이 아니고 유행을 만들어내기 위해 패션 신 전체에 분탕질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 패션쇼는 지금의 패션이 과연 무엇이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개성의 발현과 사회질서

패션을 보통 개성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그러므로 옷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말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패션은 개성이라고 하지만 유행이 존재한다. 유행은 똑같거나 비슷한 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셔너블한 개성과 유행의 집단성은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 공존한다.

하지만 개성을 옷으로 표현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상력이라는 건 가지고 있는 지식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옷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는가가 상상의 영역을 풍족하게 만든다. 뭔가 그럴듯한 걸 생각해낸다고 해도 이미 어딘가 있거나 누군가 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즉 옷으로 각자의 개성을 발현하고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정도라면 당장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낫다.

그리고 여기에는 약간 더 복잡한 부분이 있는데, 개성이라는 게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이라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슬림하게 달라붙는 바지가 자기한테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와이드한 핏이 자기한테 잘 어울리는 모습이 되어 있다. 이런 건 수없이 많다. 마음에 들고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던 게 계속 변한다. 이런 흐름을 따라 취향이라는 것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나마 오래갈 수 있는 게 기본 형태의 것들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슬림의 시대든 와이드의 시대든 레귤러는 그냥 알맞게 촌티 나고 알맞게 무난한 채 계속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패션 생활을 누릴 것인가, 패션으로 뭘 하고 싶은가 같은 목표에 맞춰 시중의 옷을 적당한 수준으로 검토하고 선택하고 조합하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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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 것인가 역시 각자 취향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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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행이라는 건 단기간에 많은 제품이 나온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선택지가 많아지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치노 바지가 유행이라면 전통적 형태부터 현대적 변형 형태까지 다양한 제품을 볼 수 있다. 그럴 때 오래 함께 갈 만한 옷을 마련해놓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아무튼 SNS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행의 영향력이 더 커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워낙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경향도 있다. 모즈나 펑크, 로큰롤과 힙합 등 시대에 따라 유행하던 패션은 원래 특정 시기와 장소를 깊게 반영하고 배타적 속성도 있었다. 이제는 모두 한자리에 존재한다. 클래식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클래식이지만 포멀 웨어, 비즈니스 웨어의 영역 자체가 해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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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음에 드는 대로 아무거나 섞어도 누가 뭐라 할 일도 없고, 시대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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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기반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세대교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패션은 고급 옷이 통용되는 세상과 일상복이 통용되는 세상의 경계가 그 목표였다. 그런 구분은 귀족 시대에서 넘어온 유산, 자본주의 시대에 형성된 남녀의 성 역할, 세계대전을 거치며 만들어진 현대 의복의 형태 등에서 나왔다. 턱시도나 드레스, 아방가르드 패션 등등 일상의 옷과는 꽤 다르게 생긴 고급 옷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성공을 꿈꾸고, 성공하면 그런 고급 옷의 세계에 진입한다.

하지만 밀레니엄 세대, Z 세대 등 새로운 세대는 전혀 다른 걸 보며 자랐다. 가장 잘나간다는 힙합 뮤지션과 팝 스타, 아이돌 스타와 스포츠 스타, 뭐 하는 사람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명한 사람 그리고 최근의 인스타 스타와 유튜버, 심지어 애플이나 페이스북의 대표도 일상복과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옷을 입는다.

동경하는 롤모델이 입는 옷이 이전과 다르고, 그러므로 돈을 손에 쥐었을 때 구입하는 옷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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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패션의 주 소비자로 진입했으니 변화는 피할 수 없고 되돌아갈 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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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는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를 뜻한다. 그러므로 다른 이슈도 함께 부상한다. 예를 들어 미투 이후 여성 비하, 남성 중심적 패션 디자이너·브랜드·에디터가 자리를 내놨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몰락은 그런 변화의 상징적 사건 중 하나다. 2020년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 Black Lives Matter 이후 흑인 문제, 세계적으로는 인종차별 문제와 관련해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이 최근 투박하고 뚱뚱한 신발이나 오버사이즈의 플리스 재킷 같은 것이 고급 브랜드의 패션쇼에 등장하게 된 이유다. 패션에서는 앞으로 이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테고, 그 바탕은 라이프스타일과의 일치, 편안함과 실용성, 그리고 다양성의 포섭이다. 게다가 변화를 가속화할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얼마 전 “정장의 시대는 끝났다. 코로나19로 한 번에 캐주얼화가 되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이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브룩스 브라더스를 비롯해 멘즈 웨어하우스 등 여러 대형 정장 브랜드의 파산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의 넥타이 수입액은 전년 대비 절반 이상이 줄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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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로 인해 비즈니스 웨어는 갈 곳을 잃었고, 편안한 캐주얼웨어 속에서 새로운 패션 미감을 테스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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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자기 자신이 중심에 있다

이런 변화의 기반에는 자기중심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남이 나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나 역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패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거부한다는 건 나 역시 타인의 옷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혹시나 누군가 자신이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본다면 삶에 약간 더 즐거운 부분이 늘어날 수도 있는 거다.

즉 자기 몸 중심주의란 결국 타인의 옷으로 과연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람의 외형으로 무엇을 판단할 수 있는가로 연결된다. 얼마 전 BBC 뉴스에 “과연 포멀 웨어가 사라질까?”라는 질문에 관한 기사가 있었는데, 대답을 보면 다들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맡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걸로 알 수 있는 건 사실 금융 사기를 치려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는 것 정도다. 몸집이 큰 걸 자기 관리 부실이라고 여기는 태도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이유로 저런 옷을 입었는지 타인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르는 걸 간섭할 수도 없다. 그럴 시간에 자기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게 더 중요하다. 그런 태도가 다양성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물론 패션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으면 자신의 생활 방식에 잘 맞는 게 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알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학습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몰두하고 집착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면 시작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따로 공부를 한다기보다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널려 있는 정보를 찬찬히 둘러보는 데서 시작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리고 학습에 따른 경험도 필요하다. 패션은 비정형에 정답이 없는 분야이고, 각자 생긴 게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다르기에 경험에 기반한 조절 과정이 필요하다. 이 방면으로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옷을 평생 매일 입는다. 1년이면 365회 이상의 착장 경험이 자동으로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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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을 그냥 스쳐 보내는지, 아니면 작은 실험과 교정의 반복을 통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인식하며 뭔가를 쌓아보려 하는 건 각자의 옷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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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패션은 결국 자유로움이고, 각자가 다른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표식이다. 그러므로 남과 다름을 뽐내는 방법을 남과 같은 걸 두르고 같은 몸매를 만드는 데서 오는 안정감에서 찾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다양성이 서로 만나고 자극을 줄 때 패션 세계는 한층 넓어진다. 무엇보다 패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기존 관습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때론 변화를 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폼이 안 나는 게 아닐까.

박세진

옷을 사고, 입고, 세탁하고, 버리는 패션 소비문화 전반을 말하는 칼럼니스트. 《패션 vs 패션》, 《레플리카》, 《일상복 탐구: 새로운 패션》을 썼으며, 《빈티지 맨즈 웨어》, 《아빠는 오리지널 힙스터》 를 번역했다. 직접 운영하는 패션 전문 사이트 패션붑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며, 패션 바깥에서 패션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계간지 〈OOO〉 발간을 앞두고 있다.

  • 2020.11.16
  • Writer. 박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