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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 Issue 17. 사이의 세대

밀레니얼 세대, 아버지

Millennial Fathers

  • 2020.06.29
  • Writer. 정지우

나는 이제 막 아버지가 된 밀레니얼 세대다.

요즘은 매일 아이와 단둘이 잠을 잔다. 보통 밤 10시를 전후한 시간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는 새벽 2~3시까지 아이 옆에서 할 일을 한다. 혹시라도 아이가 깨지 않을까 종종 침대 쪽을 쳐다보면서, 나는 줄곧 책상에 머물러 있다. 아이가 타자기 소리나 책장 넘기는 소리에 깨지 않도록 밤새 유튜브로 빗소리나 파도 소리를 틀어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간에 아이가 깨기라도 하면 금방 아이 곁으로 달려가 가슴을 토닥여주고, 아이를 재운 다음 책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새벽 늦게 아이 옆에 눕는다. 그러면 왼쪽 귀로는 빗소리가 들리고, 오른쪽 귀로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아이와 단둘이 매일 자는 이유는 아내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나는 사정상 부산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줄곧 아내도 휴직을 하고 함께 있었지만, 반년에서 1년 정도는 이렇게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아이 돌보는 일을 많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나도 아이를 돌보는 한편, 내가 해야 할 일도 부지런히 해나갈 수 있다. 그래도 아이를 씻기고, 아이와 함께 잠을 자고, 또 종종 아이와 산책을 나서는 일은 내 몫이다. 종종 아이가 나에게 깊이 의지하는 걸 느낀다. 그러면 어쩐지 나도 아이에게 깊이 의지하는 마음이 든다.

굳이 이렇게 지칭해보자면, 나는 아빠가 된 밀레니얼 세대다. 그리고 내 주위에도 서서히 아빠들이 제법 생기고 있다. 사람들마다, 부부들마다, 가족들마다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한편으로는 다 똑같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결혼 초기에는 하루하루의 행복을 무척 깊게 누리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생활 습관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기 바쁘다가 어느덧 아이가 태어나고, 다들 아들 바보나 딸 바보가 되고, 그러다가 육아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앓는 소리를 하고, 어느덧 아이와 조금씩 말도 통하고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면서 다시 세상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굴고, 슬슬 돈 걱정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다들 닮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알던 아버지들과는 참 다르기도 하다.

바뀌고 있는 삶의 중심

사실 사람마다, 가정마다, 아버지마다 성향이나 살아온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예전의 아버지는 어떠했고, 요즘의 아버지는 어떠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대개 우리 세대는 아버지를 다소 어색해하거나 어려워하는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 세대는 그런 경향이 더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의 우리 세대 또한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친구처럼, 그토록 가깝게 지낸 기억은 다들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아버지란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가 들어와서, 술 냄새 풍기며 TV를 보다가 다음 날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가서 집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말에도 아버지와 함께 놀았던 기억보다는 주로 어머니나 동생, 이종사촌과 놀았다. 아버지와 이따금 방학 때 함께 휴가를 간 적이 있긴 하지만, 휴가나 여행은 아무래도 일상적인 친근감을 만들어내긴 힘들었다. 나만 하더라도 내 일상은 주로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여동생과 어머니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사회생활이든, 집에서 해야 할 자신의 일을 하기에 바빴다.

그에 비하면 요즘의 아빠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에 필사적인 것 같다. 물론 안 그런 아빠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아빠들은 집에 돌아가느라 밖에서는 별로 볼 시간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는데, 매주 공원이든 키즈 카페든 강이나 바다든 어딘가에서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아이와 노닐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꼭 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사만은 아닌 것 같고, 상당 부분 그렇게 해야만 비교적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터득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빠들은 바깥사람, 엄마들은 안사람, 그렇게 사회와 가정의 경계는
성별과 역할로 엄격히 나뉘던 시절도 있었지만, 갈수록 그런 구별은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오히려 한 사람 안에서, 자신이 사회인으로서 살아내야만 하는 역할 세계가 있고, 반대로 자기가 이루고 만들어나가는 가정의 세계가 있어서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살아가는데, 많은 경우 그 무게중심도 가정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사나 사회에서 워커홀릭으로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며 자아를 찾는 것보다는 워라밸을 찾고, 저녁이 있는 삶을 찾으며,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찾는 것이 점점 더 확고한 삶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다.

불안과 위험의 시대에서

과거보다 점점 더 가정 중심적이고 육아에 어색하지 않으며, 아이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늘어나는 건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나만 하더라도,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주말을 다른 친구와 보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잠깐 동안 밥이나 먹는 정도이지, 대부분의 시간은 가정에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꼭 무슨 대단한 포기나 희생처럼 생각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소중한 시간에 남 눈치 안 보고 집중할 수 있는 게 좋고, 행복의 의미를 가장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런 시간을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점점 더 불안과 위험이 증대되고, 휘발성이 강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평생 가리라 믿었던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도, 직장도, 사는 곳도 달라지면서 1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된 경우가 많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수시로 바뀌고, 새롭게 관계 맺어야 하고, 나를 꽉 묶어줄 만한 공고한 공동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개념도 거의 사라져서 이직도 무척 흔해졌고, 인간관계도 대부분 서로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느냐에 따라 재편되어간다. 그런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라는 것은 아무래도 과거와도 좀 다른 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온통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기 바쁜 세상에서
적어도 가족만큼은 내 편이고 서로의 편이라고 믿을 수 있다.

세상의 관계라는 건 금방 교체되거나 달라지기 마련일지라도, 가족 관계만큼은 제법 공고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는 서로의 안식처 같은 존재인 것이고, 이를 필사적으로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세상은 점점 더 ‘타인들의 세계’가 되어가는 것이다. 개인주의라고 부르든, 각자도생이라고 부르든 그렇게 자기 앞가림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서 그래도 인생의 공동 운명체로서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함께 삶을 일구어나가고, 함께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가족은 점점 더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밀레니얼 세대의 아빠란 존재는 아마도 그런 바탕 위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세대가 유독 더 다른 세대에 비해 착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로 태어나 자랐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가 처한 조건이, 우리의 세상이,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더 가까운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한다. 이 불안한 세상에서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곁의 존재, 그 존재를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나마 여전히 그런 존재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하나 남아 있다면 바로 가족인 것이고, 불안한 우리는 그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가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황야를 헤매던 독수리가 자신의 둥지를 찾아 마지막 날갯짓을 서두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빠를 선택하는 일에 관하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되는 일이 마냥 축복처럼만 느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빠가 되는 일은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다. 단순히 결혼 시장에서 능력 있는 남성으로서 선택받기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굳이 아빠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삶을 누릴 수 있는 방식이 무척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아빠가 되는 일은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예전에야 일정 나이대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누구든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자 순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더 이상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일을 ‘당연한’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더 행복한 삶을 위한 나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반대로 그런 삶이 행복을 줄 것 같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홀로 다니는 여행이 더 좋고, 누군가와 함께 살기보다는 혼자 사는 생활이 더 마음에 들며,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굳이 아이까지 낳고 싶은 생각은 없고, 세상에는 참여하고 싶은 모임이나 동호회가 넘쳐나고, 하고 싶은 게임이나 보고 싶은 영화가 끝도 없이 있는 마당에, 굳이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세대의 대부분 아빠들은 아빠가 되기까지 꽤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결혼 같은 건 꼭 해야 하는가, 아이도 꼭 가져야 하는가, 같은 고민을 꽤 오래 이어가다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테고, 아이를 가져보자고 이야기하고 선택하기까지 과거보다는 더 많은 단계가 있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태어나는 일을 상상하고, 기대하고, 그렇게 아이를 만나는 것일 테니
자신의 그런 선택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20대 때까지는 아빠가 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둘이서 행복한 삶을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 꼭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30대에 들어선 어느 무렵쯤에는 내 삶에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내 삶에 관해 지친 것도 있었다. 언제까지 오직 나의 성공에만 기뻐하고, 내가 잘난 맛으로만 살고, 나를 위해서, 나를 향해서, 나에게 수렴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 그런 삶만이 그리 좋은 것인가 하는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다소 헌신할 수 있는 나의 가정이 있으면 좋겠다고, 내 마음의 중심이라는 것도 조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좋겠다고, 그렇게 나보다 큰 무언가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나도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아이도 만났다. 그러니만큼 아무리 아이와 살아가는 일에 힘겨운 순간이 있더라도 이상하게 이 선택을 후회하는 마음이랄 것은 잘 생기지 않는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선택이고, 그렇게 내가 만들어나가고자 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자기의 것은 자기가 선택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밀레니얼 세대답게 나는 아빠가 되었다기보다는 아빠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아무래도 내가 증명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삶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은 나의 삶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정지우

1987년생, 문화평론가.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밀레니얼 세대 작가로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등을 통해 독창적인 신예 저술가로 주목받았다. 에세이집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밀레니얼 새대를 주제로 한 사회 비평 에세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를 썼다. 스스로 아빠를 선택한 밀레니얼 세대로서 자신의 선택을, 그리고 삶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


  • 2020.06.29
  • Writer. 정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