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년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

Story we want to share in 2020

  • 2020.12.30
  • Editor. 김하민

이 시대 보편적인 현대 가정의 오늘을 들여다보며 여러 삶의 주제를 다루어 온 볼드저널 에디터들은 올해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했을까? 각자의 일상에서 무력감을 가능성으로, 우울을 위로로, 슬픔을 감탄으로 바꿔준 영감의 출처를 되짚어 보았다.

1. 어린이라는 세계

시의성과 객관성에 바탕을 둔 기획에 더 비중을 두는 에디터의 글쓰기에 익숙한 내게 자기고백적 에세이는 영역 밖이라고 믿었다. 어린이 독서 교육자이자 저자 김소영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처음으로 나의 삶 속에서 시작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어린이라는 ‘타자’에 대한 정중하고 사려깊은 진심이 묻어나는 문장 사이에서 내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때론 내 어린 시절을 복기하거나 돌봄의 대상으로 아이를 대하던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책 속 어린이들은 너무 어엿하고, 때로 웃기고, 자주 눈물을 쏟게 했다. 수업 전 아이들의 겉옷 시중을 드는 일종의 의식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키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고유의 존재로 어린이의 세계를 만나게 하는 이 따뜻한 책을 올해가 가기전 안부를 묻고 싶은 친구들과 함께 읽고싶다.  

2. 농담을 건네 듯 재미있게

“요즘 좀 어때요?” 동료들은 평소보다 더 자주 안부를 물었다. 자주 괜찮지 않았다. 생각이 무거워질수록 한걸음 나가기가 어려웠다. 번아웃의 기로에서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도쿄 R부동산은 이렇게 일합니다> 류의 서적을 읽었다. 그런데 생각에 매몰된 내게 활력을 준 건 유튜브 채널이었다. 유튜브 안보던 나를 유튜브로 입문하게 한 <모티비>는 프리 에이전트 방식으로 ‘모베러웍스’를 꾸려가는 과정을 여과없이 담는다. 현실 조언 인터뷰 시리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쌍방향 콘텐츠 실험, 브랜딩 발상법을 제품화 한 누브랜딩 킷 등 크리에이티브 그룹의 면모도 좋았지만 ‘농담을 건네 듯 재미있게’ ‘1970년대 아메리칸 빈티지’ 같은 감수성을 풀어내는 특유의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모티비와 함께 콘텐츠 제작자로서 현실에 발딛고 뜨겁게 일하는 맛과 멋에 대해 자주 떠올렸다. 이제 출간을 준비한다는 모빌스그룹의 다음 행보를 응원하는 40대 모쨍이 임을 인증한다.

1. 내 실력은 내가 증명한다

래퍼의 무대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은 말, 그리고 그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모두 고려해 만들어진다. ‘실력으로 증명하라’는 부제대로 참가자들은 남과 다른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두가 자신이 최고라고 소리치지만, 실력을 증명하는 건 모두가 될 수 없다.
Mnet <쇼미더머니 9>에서 참가자가 무대를 만드는 과정은 회사원인 내가 일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머쉬베놈과 미란이의 ‘VVS’. 힘들었던 과거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가사와 무대를 즐기는 지금의 모습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공연 직전에 팀원이 하차하지만 상황 탓을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우는 비하인드 씬까지도.

2.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10대에 귀여니가 있었다면, 20대엔 정작 내 연애에 바빠 로맨스 소설을 건너 뛰었다. 뒤늦게 로맨스 소설을 찾아 읽으려니 괜히 느끼하고 꾀죄죄했다. 그러다 고요하고 완벽하게 로맨스력을 충전해 주는 책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을 만났다.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악역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 이름을 붙일 거라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지.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고. 인쇄돼서 남을 텐데 뭣하러 싫은 사람 흔적을 굳이 넣나 싶은거야.” 책 속 문장은 시끄럽던 세상을 폭 덮어주는 함박눈처럼 따뜻하고 다정하다. 어차피 삶이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를 곁에 남기며 살아가는 게 아니었던가, 읽다 보면 상실되었던 인류애가 잔잔하게 채워진다.

3. 믿고 보는 출판사 TV

출판사에서 만드는 영상 콘텐츠의 목적은 뚜렷하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고, 사고 싶게 하는 것. 수많은 회사에서 유튜브 채널을 만들지만, 계속 보게 되는 채널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제품 얘기가 나오는 순간, ‘안 사요’라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거든.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는 다르다. 업로드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 대놓고 편집자들이 나와 자기가 작업한 책을 들이미는데도 더 듣고 싶어진다. 스토리 라인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지, 얼마나 아름답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했는지, 실제로 작가의 성격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북 디자인에는 어떤 의미를 숨겨 넣으려 했는지, 신나게 영업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책을 사고 싶은 마음 뿐 아니라, 앞으로도 열심히 뭔가를 덕질하며 잘 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지경이다. 


1. 가장 따뜻한 의사들의 이야기

따뜻한 컨텐츠를 접하고 있으면 나 역시 절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올봄에 방영된 신원호 PD와 김우정 작가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내게 그렇다. 어느 특출난 의사 한 명을 집중 조명하는 흔한 ‘의드’와 달리 슬의생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을 다룬 휴머니즘 드라마다. 그 어느 누구도 지나친 영웅이나 악역으로 묘사되지 않으며, 등장인물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이다. 나는 유독 삶과 죽음 사이 경계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의료진들에 눈길이 갔다. 응급콜이 울리면 세상만사 제쳐두고 곧장 병원행이던 그들은 언제나 환자에게 진심이었다. 단 한 번도 의사라는 타이틀에 기고만장하거나, 피곤에 쩔어 귀찮은 투로 환자를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웃음으로 살아낸다. 드라마 속 의사들이 매일 피 튀기는 현장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넉넉한 미소 덕분은 아니었을까.

2.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은 평범한 일상을 맘껏 누리며 살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반성이 담겼다. 당장의 현실에 지지 않고 되도록 삶을 긍정하며 살길 거듭 강조한다. 무엇을 눈에 담고자 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향한 마음의 온도가 달라진다. 감사하게도 그 기회는 매일 새롭게 주어진다. 변화는 작고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는 나의 믿음을 어느 잠언 시 하나로 대신한다.

<당신에게 달린 일>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 
한 송이 꽃이 꿈을 일깨울 수 있다.
한 그루 나무가 숲의 시작일 수 있고
한 마리 새가 봄을 알릴 수 있다. 
한 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 수 있다.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다.
한 줄기 햇살이 방을 비출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다.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작자미상>

  • 2020.12.30
  • Editor. 김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