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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로운 책 읽기

Useless Reading

  • 2020.12.10
  • Editor. 김하민
  • Writer. 박총

작은 만남과 취미, 휴식이라는 잉여로운 활동에서도 쓸모와 의미를 찾는 시대다. 성취지향적인 책 읽기에 빠진 현대인에게 권하는 소박한 독서가 박총의 무용하고 순수한 책 읽기에 관하여.   

목적에 길들여진 시대

목적이 이끄는 삶. 별 생각 없이 사는 쪽보다 분명한 목표를 추구하는 삶이 더 낫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철이 들면 영양가 없는 짓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을 하고 돌아와 잠들기까지 매 순간 목적을 지향하는 생활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일과 휴식, 식사와 만남까지 24시간을 의미 있고 유용한 활동으로 가득 채운다면 누구보다 ‘충만한 삶’을 누려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생활이 되레 우리를 짓누르지요. 의미 있고 유용하다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을 억압하기 마련이니까요. 사는 일이 힘든 것은 고단한 밥벌이와 쉽지 않은 인간관계, 끝나지 않는 일상의 책무가 주된 원인이겠지만 지나친 목적성과 유용성의 추구도 한몫 거듭니다. 그리고 거기엔 독서가 빠지지 않습니다. ‘취미가 독서’라는 고전적인 이디엄에서 보듯 본디 독서는 대표적인 여가활동입니다만 대한민국에서 책 읽기만큼 성취지향적인 몸짓도 없지요.

그냥 좋아서 하는 독서

목적이 이끄는 독서.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책 읽기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읽기란 행위가 생존과 성공, 적어도 자기계발이나 경쟁력 강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뒹굴뒹굴 책장을 넘겨야 예쁠 나이의 아이들도 왜 독서를 하느냐고 물으면 이러더군요. “책 읽으면 똑똑해지고 좋은 대학 가잖아요.” 

그런 책 읽기를 속되다고 보는 저 같은 독자들은 고상한 목적을 내세웁니다. 자아성찰이나 정신수양 같은 덕목이 그것이지요.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책을 수단으로 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아계발서를 섭렵한다고 해서 내 몸값이 높아지지 않듯 웅숭깊은 책을 정독한다고 해서 성인군자가 되진 않습니다.  〈읽는 삶, 만드는 삶: 책은 나를, 나는 책을〉의 저자 이현주 선생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책을 읽는다고 유능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모두 자기만큼의 사람이 될 뿐이다.” 

 그럼 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순수한 유희와 쾌락으로의 독서가 멸종 위기라서 그렇지 원래 독서는 쓸모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단지 좋아서 하는 게 독서입니다. 가끔 감탄할 만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이 유일한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종이책 읽기를 권함〉의 저자 김무곤의 말마따나 책 읽기는 본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책 읽기’입니다. 물론 독서가 무익하다고 하면 거짓이죠. 책 읽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져다주니까요. 하지만 오직 유익을 캐내려 책을 파면 평생을 해도 독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게 되고요. 그게 독서의 묘미이거든요.

바툰 숨을 헐떡이며 살도록 내모는 사회, 그렇지 않으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사회, 조금만 빈둥거려도 왜 그리 한가하냐며 스스로에게 죽비를 치게 만드는 사회에서 굳이 독서마저 목표 달성의 수단이 되어야 할까요? 책 읽는 시간만이라도 좀 잉여로워지면 안 될까요? 밥벌이와 일상의 책무를 마치고 책을 펴는 시간을 내 삶에 가장 ‘플렉스’한 시간이 되게 해보세요. 책장을 넘기는 한 시간, 혹은 반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그 시간만큼이라도 무언가에 쫓기듯이 보내지 말고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면 어떨까요. 그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가 아닐까요? 

책을 숭배하지 않기

독서와 친하지 않다면 책을 내려놓으세요.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들어도 좋아요. 독서가 다른 여가 활동보다 더 우월한 활동은 아닙니다. 어릴 적에 외출했다가 돌아온 부모님이 책을 읽는 저를 보고 “아이고 착하다, 우리 아들!”이라고 해서, 이후로 독서를 숭배하게 됐지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독서는 여가 활동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지점은 대단히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독서를 우위에 두는 한 수단과 방편으로의 독서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활자 책만 유일한 책이 아닙니다. 자연책도, 인생책도, 사회책도 우리가 읽어 나가야 할 책입니다. 부모는 자식한테 책은 안 읽고 놀기만 좋아한다며 지청구를 늘어놓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라는 책, 친구들과 관계 맺음의 책,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책을 읽고 있으니까요. 

프랑스 작가인 다니엘 페낙은 〈소설처럼〉에서 독서가 얼마나 잉여롭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가 선포한 ‘독자의 10가지 권리’가 어찌나 유쾌한지 한 번 보세요.

잉여로운 책 읽기

책을 끝까지 마쳐야 한다는 부담일랑 내려놓으세요. 읽다가 재미없으면 건너뛰면 그만이죠. 흥미로운 데만 골라 읽으세요. 어려운 구절에 부딪히면 몽테뉴처럼 ‘한두 번 공격해보다가 집어치우면’ 됩니다. 만화책이면 어때요. 읽은 책을 수십 번 다시 보면 어때요. 그렇게 남다른 잉여력을 발산해보세요. 오후의 고양이를 닮은 나른한 책장을 넘기고, 그러다 만나는 문장에 빠져드는 ‘잉여의 책 읽기’야말로 독서의 최고봉입니다. 책은 바로 그런 독자에게 자기계발과 내적성숙이라는 덤을 안겨줍니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 이런 것일까요? 쓸모 없어짐으로 자신의 쓸모를 드러내는 책. 

남송의 시인 이청조는 내가 아는 한 독서의 향락을 최대치로 누린 사람입니다. 월급을 받는 날이면 애서가인 남편과 함께 책을 사며 아이처럼 즐거워했지만 출세나 성인이 되는 데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책 읽는 기쁨 자체를 한껏 누릴 뿐이었지요. 그렇게 책과 더불어 산 그가 남긴 말이 우리네 심금을 울립니다. “비록 가난과 고뇌 속에서 살기는 하였지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살았다.” 

우리 대부분도 돈 문제나 인생의 고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때론 죽을 것처럼 괴로운 날도 통과하겠죠. 하지만 책을 벗한 덕에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다면, 그러면 됐습니다. 권력과 재물 대신 책을 움켜쥔 대가 치곤 충분하지 않나요? 잉여로운 책 읽기가 주는 가장 큰 보상입니다.

모던 파더 | 박총 

네 아이의 아빠이자 꽃과 책이 있으면 행복해지는 사람. 어쩌다 공돈 만 원이 생기면 꽃을 살까 책을 살까 고민하는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마흔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으며 저서로 〈읽기의 말들〉,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밀월일기〉, 〈욕쟁이 예수〉 가 있다.

  • 2020.12.10
  • Editor. 김하민
  • Writer. 박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