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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 Issue 18. 오늘의 패션

나만의 셔츠를 고르지 않는 이유

WHY I DON’T CHOOSE MY OWN SHIRTS

  • 2020.12.07
  • Writer. 정지우

옷 고를 이유가 사라졌다

결혼한 이후로는 혼자서 옷을 사본 일이 거의 없다. 반면 결혼하기 직전, 막 30대가 되고 돈을 좀 벌기 시작하면서 내 삶에서 혼자 가장 많은 옷을 골랐다. 20대 내내 패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나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다소 재밌는 사실은 그런 시절에 나를 알게 된 아내는 내가 옷을 잘 입어서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아내는 원래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나는 인생에서 패션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시기가 아내를 만난 때였다. 혼자 아웃렛이나 백화점에 가서 정장과 코트, 니트를 사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입는 일에 재미가 들렸다.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덕분에 아내의 눈에 들었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고, 그렇게 결혼까지 한 것이다. 결혼 이후에 사는 옷은 주로 아내가 골랐다. 나로서는 꼭 입고 싶은 스타일에 별반 욕심이 없기도 했으니, 아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는 게 여러모로 최선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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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옷을 고집해 입을 이유도 없었고, 굳이 아내의 미의식을 거역하면서까지 입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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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나의 쇼핑 리스트

결혼 후, 나만의 쇼핑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아내나 아이 옷을 산 적은 있다. 혼자 백화점을 지날 때마다 마네킹에 걸려 있는 옷들이 참 예뻐 보여 아내한테 사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번은 여행을 앞두고 커플 룩을 사 들고 간 적이 있다. 아내 것은 갈색 체크무니 스커트였고, 내 것은 같은 색깔과 무늬의 바지였다. 출산 이후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처음 둘이서 나선 여행길에 그렇게 우리는 커플 룩을 입었다. 아내는 나에게 가을 룩을 여름 여행에 사면 어쩌냐고 타박했지만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고, 여행 내내 커플 룩을 입고 사진을 잔뜩 찍었다.

그즈음 시작된 옷에 대한 또 다른 욕망도 있었다. 그건 우리 가족 셋이서 함께 입을 ‘패밀리 룩’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가족은 서로를 집 안에서 보는 시간이 가장 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각보다 집 안에서 무엇을 입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집 안에서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는 더 귀여워 보이고, 아내는 더 예뻐 보이고, 나도 더 친근하거나 괜찮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는 셋이서 맞춰 입을 잠옷을 사기도 했다. 셋이서 함께 입을 외출복 또한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아마도 제법 근사한 여행을 떠날 어느 때에는 패밀리 룩을 맞춰 입을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내는 패션이야말로 대외적인 사회 활동을 나타내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편이다. 나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가 갈수록 촌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헤어스타일 때문이래. 청년 시절에 하던 헤어스타일이 익숙하다 보니 계속 유지하는 거지. 그런데 어느덧 그 시절에 하던 헤어스타일은 구시대의 아저씨 스타일이 되는 거라고 하더라.”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는 패션이 그래. 입던 옷 계속 입으면 나이 들어 보이는 거야. 새로운 패션을 더 열심히 좇아가야겠어” 하고 단단히 다짐하듯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세월과 함께 계속 흘러가는데, 그저 그런 흐름에 따라 나이 들고, 나의 흐름 속에 떠내려가다 보면 내가 어딘지 낡은 존재가 된다는 게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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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떠내려가지 않고 세상이라는 무대에 발 하나라도 걸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버티면서 “나 아직 이 세상에 있소” 하고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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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나이 드는 게 무슨 대수라고, 조금 낡은 스타일로 살아가면 어떠냐, 그저 오늘 행복하면 그만이지, 나는 나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이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이란 꽤 복잡한 존재여서 때론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고, 그로부터 얻는 작고 달콤한 만족감이 삶에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때로는 그런 시선 때문에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남들 따라 사느라 자신을 잃어버리는 건 불행의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살겠다고 남들을 다 무시해버리면 그 또한 외롭고 답답한 삶이 될 수 있다. 결국에는 가끔은 조금 젊어 보이고 싶기도 하고, 조금은 세련되어 보이고 싶기도 하며, 그렇게 그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패션이라는 것도 베란다 한쪽 구석에 있는 화분처럼 적절히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의 패션, 우리를 담는 옷

나도 거리를 걸으면서 어느 정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불특정 다수에게 꽤 매력적인 남성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는 이런 욕망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게 사실이다. 이제 와서 어떤 이성에게 근사한 남성으로 보인다고 한들 별반 의미도 없는 것이고, 다소 덜 매력적이고 시대에 뒤처진 듯 보여도 역시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내와 데이트를 나설 때는 묘한 경쟁심이 생기곤 한다. 남들이 볼 때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며 옷을 잘 갖추어 입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그냥 동네 아저씨나 노숙자처럼 보인다는 건 아내에게도 꽤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래서 변화된 감각이 있다면 약간의 공동체 감각 같은 것이다. 나는 이제 매력적인 남성보다는 매력적인 커플로 보이길 원하고, 매력적인 아빠라든지 매력적인 가족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하는 칭찬보다는 우리를 향해 하는 칭찬이 더 기분 좋게 들리기도 한다. “예쁜 가족이다”, “매력적인 부부다”, “참 좋아 보이는 셋이다”라고 해주면 더 큰 의미가 느껴진다는 얘기다. 그렇게 패션은 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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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패션은 뭐랄까, 내가 아닌 우리에 대한 것이 되었고, 우리의 행복이나 의미와 관련한 것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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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면 패션은 정말이지 삶의 변화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패션은 삶이 어떤 형태를 갖추어가느냐에 참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가끔은 어떤 패션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족이 서로 비슷한 분위기에서 잘 어울리면서도 세련된 패션을 과하지 않게 잘 갖추고 있으면, 그들은 어쩐지 서로에 대해 이해심이 있고 관계가 다정하고 돈독할 것만 같다. 반대로 패션이 워낙 제각각이어서 불협화음마저 자아낸다면, 각자의 개성이 참으로 강하고 함께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다양성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패션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충 입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면, 그들은 아무래도 패션보다는 다른 것에 더 큰 행복이나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는 가족이려니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보다 더 연결되어 있고, 보다 더 함께하는 듯한 느낌의 가정을 추구하는 편이다.

결혼한 남자의 패션 감각

나는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었고, ‘나의 패션’ 보다는 ‘우리의 패션’ 쪽으로 기울어버린 듯한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홀로 어딘가를 나설 때나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사회생활 속에 있을 때면, 나만의 패션 감각이라는 것이 신경 쓰일 때가 있다. 어느 때는 내가 청년으로 보일지, 그저 아저씨로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청년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외출에 앞서 거울 앞에 서면, 어떤 코드를 선택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머릿속으로 ‘요즘 유행은 꾸안꾸라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단정하고 자연스럽게 갖추어 입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뜻인데, 사실 유부남의 패션에 그보다 나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그렇게까지 과하게 차려입은 듯 보이지 않으면서, 누구나 그저 스쳐 지나가고 말 동네 아저씨 같지도 않은, 딱 중간 정도에 그러한 ‘유행’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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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안꾸’는 어쩌면 유부남들이 만들어낸 유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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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약간의 댄디하고, 약간은 모던하고, 그렇다고 과하지 않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이성적인 어필을 하지도 않는, 아주 적당하고 자연스러운 타협점을 찾아간다. 그것이 나의 패션 감각이라면 패션 감각일 것이다. 가족과 함께할 때는 어디까지나 서로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럽고도 다정한 모습이길, 바로 우리가 그런 가족의 모습이길 바란다. 또한 홀로일 때는 누군가가 너무 다가가고 싶지도 않고, 너무 다가오길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서로를 괜찮게 바라보는 정도의 사람이고 싶다. 그런 마음들이 나의 패션이랄 것에도 녹아드는 듯하다.

그렇게 변화하는 패션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각은 내 삶의 변화와 깊은 부분에서 일치하며,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패션에 대한 태도라든지 의미 부여 또는 선호 같은 것은 그 시대 나의 무척 중요한 부분을 말해준 것 같다. 언젠가 유럽의 한 도시를 홀로 여행하다가 마주친 노부부가 생각난다. 백발의 그 노부부는 각자 회색과 갈색 외투를 입고, 어딘지 근사한 모험가 같은 느낌으로 손을 꼭 잡고, 각자 배낭을 멘 채 걷고 있었는데, 나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먼 훗날 아내와 내가 누가 봐도 참 잘 어울리는 옷을 함께 갖춰 입은 채 어느 낯선 도시를 걷고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런 모습이라면 아마 우리의 관계도 그만큼 서로의 깊은 곳에 닿아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하게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정지우

1987년생, 문화평론가.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밀레니얼 세대 작가로 《청춘 인문학》, 《분노 사회》 등을 통해 독창적인 신예 저술가로 주목받았다. 에세이집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밀레니얼 세대를 주제로 한 사회비평 에세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를 썼다. 스스로 아빠를 선택한 밀레니얼 세대로서 자신의 선택을, 그리고 삶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 2020.12.07
  • Writer. 정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