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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 Issue 17. 사이의 세대

우리 뭐 하고 놀까?

What Should We Do Today?

  • 2020.09.14
  • Editor. 김하민
  • Photographer. 이주연

간혹 시대에 뒤처졌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는 이들이 있다. 요즘 문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진심의 자국도 희미해지는 걸까? 올해 78세 이찬재·안경자 부부는 맘껏 사랑하기 위해 새로운 세대의 언어와 문법을 배운다. 인스타그램에 손주들을 위한 그림 편지를 남기고, TikTok에서는 손자들과 함께 춤을 춘다. 36년의 이민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에 놀러 온 손주들에게 묻는다. “우리 오늘 뭐 하고 놀까?”

인스타그램에 손주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세요. 그런데 본래 계정 이름이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이 아니었다고요?
(찬재) 1981년부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이민 생활을 했어요. 거기서 외손자 알뚤과 알란이 태어났고, 근거리에 살면서 가깝게 지냈죠. 그러다가 2015년 1월, 딸 가족이 갑자기 한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5년 동안 차로 등·하교시켜주던 아이들이 곁에 없으니 너무 허전한 거예요. 한동안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TV만 본 것 같아요. 뉴욕에 있는 아들이 무료하게 지내는 제가 걱정됐는지,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는 건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미술 전공도 아닌데 이 나이에 무슨 그림이냐 싶었는데, 아들이 간곡하게 원하니 결국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chanjealee’라는 계정이었던 것 같아요.
(경자) 알뚤과 알란이 한국으로 돌아간 그해 봄, 손자 아로가 태어나 뉴욕에 갔어요. 이제 갓 백일 된 아로를 처음 본 순간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너무 예쁘더라고요. 옆에서 남편이 아로를 지그시 보며 “아로는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 하니, 아들이 “뭐가 그리 궁금하세요?” 하며 되물었죠. 그러자 남편은 “아이가 커서 뭐가 됐을 정도에는 내가 이미 세상에 없을 텐데 궁금하지 않겠냐?”라고 했는데, 아들 입장에서 그 말이 충격이었나 봐요. 언젠가 부모님이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처음으로 생각한 거죠.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아들이 손주들을 위해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계정 이름이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으로 바뀌었지요.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을 땐 어땠나요?
(경자) 당시 국제학교 문학 교사이던 저는 Googles docs로 숙제도 주고받는 신세대 할머니라고 생각했지만, 인스타그램은 그때 처음 들어봤어요. 당연히 처음엔 쉽지 않았죠. 아들이 하라는 대로 그림을 찍어 올렸는데, 아주 시커멓게 나오는 거예요. 뭔가 잘못됐나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기억이 나요. 사실 저희 같은 노인은 단축키나 조작키 잘못 눌렀다가 크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들은 괜찮다고 그냥 그대로 놔두라고 저희를 안심시키더라고요. 나중에 아들이 말하길, 노인들이 첨단 기기를 사용할 때 겪는 어려움과 적응해가는 과정을 기록해두고 싶었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인종, 문화, 나이와 상관없이 전 세계 다양한 40만 명의 팔로어가 그림 편지를 보고 있어요. 그 인기에 힘입어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라는 책도 출간했고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두 분 이야기에 뜨겁게 반응하는 걸까요?
(찬재) 최근 집 앞 공원을 걷다가 까치가 둥지를 짓는 걸 봤어요. 암수 한 쌍이 까딱까딱 움직이면서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는데, 아주 인상적이더라고요. 집에 돌아와 까치에 대해 검색해보니, 까치는 알을 낳기 전 3~4월에 미리 둥지를 지어놓는대요. 까치도 자기 시간을 들여 집을 짓고 가족을 지킨다는 사실이 유난히 감동적이었어요. 그때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그림을 그렸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공감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되도록 비극적인 것보다 희망적인 내용을 그리려 해요. 물론 세상이 그렇게 밝은 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싶어요. 팔로어분들도 그런 이야기에 위로받는 게 아닌가 싶어요.
(경자) 편지체로 글을 쓰다 보니 다들 자기한테 직접 말하는 것 같다는 댓글이 많이 달려요. 돌아가신 할머니·할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자기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웃음) 그 있잖아요, 랜선 할아버지!

손주들 반응은 어떤가요?
(경자) 아이들한테 일절 물어보지 않아요. 처음에는 딸이 몇 번 보여줘서 애들이 댓글도 달았지만, 지금은 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걔들 또래에 흥미롭게 볼 것 같지도 않고요.(웃음) 그림을 그리고 나서 매번 의식처럼 하는 게 하나 있어요. 손주들 이름의 앞 글자를 따 ‘For AAAL’이라는 이니셜 새기는 것. 전 세계 40만 명이 보고 있긴 하지만 결국 알뚤, 알란, 아로, 루아를 위한 선물이니까요. 더하거나 없애지 않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요.

이른바 ‘요즘 시대 플랫폼’에서 주목받으려면 어느 정도 트렌드 팔로 업이 필요해요. 트렌드는 어떻게 파악하나요?
(경자) 주로 손자들을 통해 배워요. 요즘 유명한 유튜버는 누구고, 어떤 게임이 유행하는지 등 손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든요. 물론 운영자로서 팔로어들이 선호하는 내용이 뭔지 살펴보기도 해요. 어떤 게시글에 ‘좋아요’ 수가 많이 달리는지 분석도 하고, 댓글이나 DM도 모두 읽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계정이 있으면 어떤 해시태그를 다는지도 꼭 확인해봐요. 특히 요즘에는 그림과 글 중심의 게시물보다 짤막한 스토리 영상이 주목도가 높은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서 ‘아무 노래 챌린지’ 따라 하는 영상을 봤는데, 한두 번 춰본 실력이 아닌 것 같던데요.(웃음)
(경자) 아이들이 저희 집 근처에 살아서 자주 놀러 와요. 자기들이 좋아하는 BTS, EXO, Wanna One, iKon 등 아이돌 춤을 같이 춰보자며 알려주는데, 우린 어설프더라도 따라 해봐요.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알뚤과 알란이 한국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는 게 반가우면서 대견하더라고요. 둘째 알란은 힙합 활동도 하고 유튜브에 자작곡도 올리고 있어요. 최근에는 딸이 아이들과 춤추는 영상을 TikTok 에 올리자고 해서, 유행하는 챌린지 하나씩 따라 하며 놀아요. 젊은 친구들이 추는 춤 배우는 게 힘들긴 하지만, 운동도 되고 좋아요.(웃음)
(찬재) 손자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는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싫다고 하겠어요. 같이 하자고 하면 해야죠.(웃음)

찬재 할아버지와 경자 할머니는 젊은 세대와 견주어도 변화에 굉장히 수용적이면서 적극적이세요.
(경자) 일단 제가 호기심이 많고 도전 자체를 좋아해요. 가급적 새로운 걸 해보는 편이고요. 어느 정도 직업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어요. 저희 둘 다 한국에서 교사였거든요. 특히 저는 브라질에서도 은퇴하고 주재원 자녀들을 가르쳤고요.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K-Pop, 아이돌, 유행어 등 요즘 애들 문화를 접하게 되었죠. 아들과 딸의 영향도 크다고 봐요. Communication & Graphic Design을 공부한 아들이 Facebook에 다니는데, 세계적 트렌드나 요즘 문화에 대해 자주 알려줘요. 딸 역시 컴퓨터를 공부해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관심이 많고요.
(찬재) 오랫동안 외국에 살았던 이유도 무시할 수 없어요. 브라질 사람은 대개 순수하고 솔직한 편이에요. 저희 세대의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가부장 문화가 짙었고, 나이가 들면 점잖게 행동해야 한다는 이미지도 강했어요. 그런데 브라질에서는 나이 든 할아버지가 짧은 반바지에 컬러풀한 티셔츠를 입고 장 보는 게 흔한 일이에요. 집안일에도 적극적이고요. 아마 조금은 더 자유롭고 편견 없는 문화에서 지낸 덕분에 비교적 새로운 걸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한 세대를 약 30년 정도 주기로 인식했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이제는 세대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자) 과거 농경 사회는 비교적 예측이 가능한 시대였어요. 하지, 입하, 소만이라는 계절 변화에 맞춰 살면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해마다 IT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그에 따라 일상도 크게 영향을 받아요.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셈이죠. 그런 면에서 미래 대비 차원에서 무언가 계획하며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요. 최근에는 터키 여행을 가려고 계획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찬재) 저는 그게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1981년에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민 갔을 때,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남은 여생은 당연히 상파울루에서 보낼 계획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바꾸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결정적 계기는 알뚤과 알란이에요. “하지 하니, 언제 와~” 하며 저희를 그리워하는데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경자) 저희가 지금 TikTok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하지만, 요즘 애들에 비하면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배우는 속도가 매우 느려요. 어쩔 수 없이 젊은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가족 말고 누구한테 편히 물어보겠어요. 지금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떠오르는 사람이 딸이랑 손자들이에요.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도 딸 가족 덕분이고요. 아무리 핵가족 시대다, 가족이 분열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가족인 거죠.

가족이 소중하다는 걸 알지만, 가족이기에 소통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찬재) 한국에 들어와 오랜만에 알뚤을 보니 벌써 수염이 나 있더라고요. 알뚤이 “할아버지 면도기 어디 있어? 나도 한번 해볼래” 하더군요. 애들이 이렇게 서슴없이 물어볼 수 있는 건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에요. 서로 피부가 닿아야 정도 생기지 않겠어요? 물론 뉴욕에 사는 아로와 루아는 매일 영상으로 보긴 하지만, 안아주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경자) 그럼에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놀고 있어요! 기술이 많이 발전했잖아요. 최근에는 아들 가족과 ‘명화 따라 하기’를 해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아들이 애들과 놀다가 문득 유명한 작품 하나를 정해 표정이나 몸동작을 따라 해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첫 작품은 5명이 둥글게 손잡고 춤을 추는 앙리 마티스의 ‘춤’ 이었어요. 각자 자기 포즈에 맞게 사진을 찍어 보내면 아들이 합성 작업을 해요. 컴퓨터 화면에 가족 모두가 모이는 거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라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맞벌이 가정 안에서 조부모 육아가 대안이 되기도 하지만, 육아관의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저마다 조부모 역할에 대한 입장이 다르니까요.
(경자) 자기 자식은 대부분 정신없이 기르는 경우가 많아요.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서툴기도 하고 그만큼 실수도 많이 하죠. 더군다나 직장 생활도 해야 하는 시기다 보니 신경 써야 할 게 이만저만 아니죠. 그럼에도 유난히 자기 자식에 대한 의무감은 강하게 발동해요. 반면 손주한테는 그 책임감이 없죠. 물론 다치지 않고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돌봐야 하는 건 맞지만, 이래라저래라 개입해선 안 되는 거죠. 우리의 역할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함께 노는 것뿐이에요. 한발 물러나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맘껏 사랑해주는 것으로 충분해요.

“두벌자식이 더 곱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찬재) 손주 이야기를 하려면 돈 내고 하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 또래들이 만나면 다들 자기 손주 자랑하기에 바빠요. 저 역시 그렇고요. 처음 손주들 봤을 때만큼 아들과 딸 태어났을 때도 이렇게 좋아했나 싶어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모든 존재에 마음이 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손주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너무 사랑스러워요. 나처럼 아이를 예뻐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알뚤, 알란, 아로, 루아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경자) 가족 모두가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생각나요. 무지개는 꿈과 희망, 밝은 미래를 뜻해요. 저희는 알뚤, 알란, 아로, 루아가 무지개처럼 밝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살길 바라요.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 뭐 하고 놀까?” 하며 서슴없이 지냈으면 좋겠어요. 알뚤이 장가가고 아이가 생겨도 지금처럼 재밌고 편안한 그런 사이요.
(찬재) 나중에 손주들 주려고 그림을 모아두고 있는데, 제가 직접 부른 노래도 녹음해 남겨주고 싶어요. 사실 저는 그림보다 노래에 소질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잘 안 들리더니 노래 부를 때마다 옆에서 음이 잘 안 맞다고 하는 거예요. 시간이 가면 더 심각해질 것 같아서 작년에 집 근처 음악 학원에 등록했어요. 선생님은 음 이탈이나 박자를 기계로 조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또 그건 싫더라고요. 두 달 다니면서 겨우 냇 킹 콜 Nat King Cole의 ‘Mona Lisa’와 에디 아널드 Eddy Arnold의 ‘I Really Don’t Want To Know’를 녹음했어요. 비록 지금은 잠시 멈춘 상태지만, 언젠간 제가 젊어서 즐겨 부르던 팝송 열 곡을 꼭 녹음해 남겨두고 싶어요.


뉴스에서 K-Pop 볼 때마다 다들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더라. 사진만 저렇게 찍고 있으면 음악은 언제 듣지? 이렇게 할아버지는 생각했는데 어제 196회 브라질 독립 기념 파티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핸폰 꺼내 들고 무대로 향했단다. 삼바 밴드의 반가운 리듬에 나도 모르게 끌린 거였어. 사람들 틈을 헤치고 찍었는데 모두 엉망이었어. 이거 쉬운 게 아니던데?

얘들아, 할아버지는 요즘에야 발견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 많은 세상인지를. 젊었을 땐 허덕허덕 사노라 몰랐단다. 철이 들어서인가? 다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게다가 이젠 앉아서도 세계 곳곳을 볼 수 있잖니? 호주에 사는 골드핀치를 보아라! 키가 10센치 정도의 이 작은 새의 색깔이 어떠니? 자연이 만든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우리 인간도 아름다울까?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림일까?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뵈러 왔지. 이때 모든 노인네들은 똑같이 외치게 된단다. “아이고 왔구나! 내 새끼들아! 고맙다, 고마워!” 그런데 잠시 후 모두들 핸폰만 들여다 보고 있는 거야. 애 어른 할거 없이. 할머니는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할머니한테서 외로움이 느껴진다.

우연히 티비에서 〈쥬라기〉 영화를 봤어. 그것도 처음부터 본 게 아니고 채널을 돌리다 앗! 공룡이다! 하고 본 거지. 아로랑 다 같이 영화관에 가서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우리가 그 공원에서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만났을 때를 상상해보자. 어마어마한 몸집, 긴 목, 점잖은 걸음걸이. 대단하지 않니? 그런데 아로야, 넌 이 공룡도 좋아하잖아? 순하고 착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이 좋아서 작년에 그렸을 때 너희들을 그 등에 태웠던 거였어. 사납고 용맹스러운 티렉스와는 너무도 다른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는 할아버지의 친구라고 기억해 다오.

나무 뒤에 숨는 아로, 숨는 순간의 그 두근거림을 할머닌 알지. 어? 얘가 어디 갔지? 할머니는 아로를 찾아 딴 곳으로 가지만 아로는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다시 들릴 걸 알고 움찔움찔 어쩔 줄 모른다. 사실 내 기억 속에는 어머니와의 이런 숨바꼭질의 정경이 없다. 나의 어머니는 연이은 출산으로 늘 힘들었을 것이고 또 당시엔 아이와 놀아주는 육아 문화가 없었을 거다. 난 7남매 중 둘째 딸이었는데 몸이 약해 무슨 놀이를 했겠는가! 아이고! 내가 남매를 낳아 기를 때는 어땠는지 생각이 나질 않네! 알뚤 알란, 너흰 기억나지? 하니랑 숨바꼭질하던 것. 아로가 그 나이가 됐구나. 아로의 숨소리가 들리지? 이번 여름 아로가 오거든 넷이서 두근두근 노올자!

  • 2020.09.14
  • Editor. 김하민
  • Photographer.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