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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 Issue 2. 휴가

야구장 가는 길

A Day at the Ballpark

  • 2016.10.11
  • Editor 이은경
  • Photo 이주연
  • Film 최소명

내년이면 지천명에 이른다는 아빠. 하지만 하늘의 뜻은커녕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의 뜻도 잘 헤아리지 못해 늘 정신과 몸이 고생이라며 웃어 보인다. 디자인과 관련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김신과 초등 6학년 남우 부자는 주변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야구광이다. 김신은 1970년대 잠실 야구장도 없던 시절 동대문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고교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웠고, 아들 남우가 네 살 무렵부터 야구장에 함께 다니며 틈만 나면 캐치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익히게 했다. 현재 ‘종로구리틀야구단’에 소속된 남우는 야구를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을 더 재미있어하지만, 프로 야구단 두산 베어스의 경기만큼은 구장을 찾아 응원한다. 여의치 않은 날은 가족 모두 TV 앞에 모여 앉는다.

여름방학을 맞아 계획한 가족 휴가는 야구, 야구, 야구. 야구 경기를 보고 또 보고, 마지막엔 남우가 경기에 출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그야말로 야구 기행이다.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단순하다. 남우가 올해 대구에 새로 개장한 야구장에 가고 싶어 했고, 야구를 사랑하는 아빠도 이곳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근사한 야구장에서 좋은 자리에 앉아 야구 경기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방학을 하면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 꼭 가보자고 남우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하나의 조건이 더 있었다. 반드시 두산 베어스와 경기할 때. 이 조건에 맞춰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예정된 날을 시작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남우의 외가가 있는 전주에도 들르고, 가는 김에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도 가보자고 했다. 우연히 그 기간에 속초에서 남우가 소속된 야구팀의 경기가 잡혔다.


처음으로 야구를 경험한 때를 기억하세요?
1970년대 중반이었는데, 고교 야구 대회였을 거예요. 하루에 네 경기를 하는데,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가서 그 경기를 모두 보는 겁니다. 야구 규칙도 모르는 꼬마가 얼마나 지루했을지 짐작이 가죠. 계속 “아빠 집에 가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아버지 없이 저 혼자 야구장에 갔죠. 집이 동대문 야구장 근처였는데 정말 자주 갔어요. 마지막 경기의 7회 정도가 되면 공짜로 야구장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시간에 주로 갔어요. 그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지요.

야구는 가족의 대를 잇는 취미인 셈이네요?
남우가 만 네 살 무렵에 처음으로 함께 야구장에 갔어요. 그런데 2회 말쯤 남우가 저에게 “아빠, 야구는 언제 해?” 그러는 겁니다. 놀이로 하는 야구랑 실제 야구 경기가 너무 달랐던 거죠. 그러더니 3회부터 엄마 보고 싶다며 집에 가자고 보채더라고요. 그런 아이였는데, 남우도 결국 야구에 빠지고 말았어요.

취미가 같은 아들을 볼 때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취미는 직업보다 더 강력하게 전수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재능이나 성격이 다를 수 있어서 직업은 전혀 다른 것을 선택하기 쉽잖아요. 반면 스포츠는 놀이이고 취미이고 감상하는 것이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하는 데 장애가 적은 편이에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알려준 어떤 문화에 빠져드는 건 아주 자연스럽잖아요. 더구나 야구는 조금만 알면 정말 재미있으니까요.

여름휴가로 야구 기행을 떠났다고요?
대구로 가서 야구 경기를 본 뒤 하룻밤 자고 광주로 가서 또 야구 경기를 본 다음 바로 남우의 외가가 있는 전주로 이동했어요. 거기에서 이틀을 보낸 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다시 속초로 가서 야구 시합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중간중간에 관광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3박 4일 코스였죠.

여행 첫날, 두산과 삼성 경기에서 두산이 재역전승을 했어요.
초반부터 확실하게 이길 것 같으면 마음은 참 편한데, 그런 일방적인 게임은 권태로워요. 역시 게임은 박빙의 승부가 최고지요.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근데 그렇게 박빙으로 가다가 져버리면 그게 마음이 아주 아파요. 한 점 차로 이기는 게 제일 기분 좋고, 한 점 차로 지는 게 제일 속상하죠. 그날 경기가 딱 그랬어요. 이기고 있다가 뒤집혔다가 다시 재역전승. 야구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8:7 케네디 스코어로 이겼어요. 남우랑 야구장 가서 그렇게 재미있게 본 경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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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의 팬인데 특별히 이 팀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남우도 처음엔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어요. 아빠를 따라서. 그러다가 제가 롯데 자이언츠 구단이 하는 꼴이 너무 비열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30년 넘게 응원한 팀을 버렸어요. 그래서 남우도 자연스럽게 서울이 연고지인 팀인 두산 베어스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잠실 야구장에 가면 두산 베어스 경기를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TV보다 현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고, 그런 날 특별히 잘한 선수에게 반하기 쉽거든요. 남우도 그렇게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보다가 자기 눈에 들어온 선수가 생긴 것 같아요. 그 선수가 정수빈과 김현수예요. 정수빈의 다이빙 캐치를 좋아해서 저랑 캐치볼을 하면 늘 공을 이상하게 던져달라고 주문을 해요. 자기가 다이빙 캐치로 잡는다고. 아내는 특별히 좋아하는 팀이 있다기보다 그냥 아들의 취향을 따르고, 저도 롯데 자이언츠를 버린 뒤 서울 팀을 응원하고, 지금은 가족 모두 두산 베어스를 응원해요.

야구를 함께 보면서 부자간의 추억도 많이 쌓였겠어요.
남우가 두고두고 저를 원망하는 일이 있죠. 그날은 외야에서 관람을 했는데, 두산 베어스의 좌익수 김현수가 캐치볼을 하다가 관중석으로, 게다가 펜스 바로 뒤에 있는 저에게 공을 던져줬는데 그걸 안타깝게도 놓치고 말았어요. 공이 다시 운동장으로 떨어지자 김현수가 그걸 집어서 야속하게도 저보다 뒤에 있는 관중에게 던져버렸어요. 그런가 하면 노경은을 뒤쫓아가 끝내 사인을 받은 적도 있어요. 아들에게 사인 볼을 안겨주겠다는 일념으로 야구장 밖에서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뒤쫓아가 받아내고야 말았지요. 평소 같으면 그런 무모한 짓은 절대 안할텐데 말이죠. 사인볼을 받고난 다음부터 남우는 노경은의 팬이 되어 노경은이 경기를 잘하지 못할때마다 마음을 졸이곤 하지요 남우도 이제 야구에 대해 많이 알게돼 저보다 더 비평적으로 감독이나 선수를 평가해요.

평소 아이와 함께 야구를 즐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캐치볼이 아이와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야구 놀이죠. 캐치볼은 배려를 가르쳐줘요. 캐치볼을 하다가 공을 놓치면 공이 뒤로 계속 굴러가요. 그러면 그걸 잡으러 한참 뛰어가는 고생을 하게 되죠. 그래서 다음번에는 상대방이 잘 잡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던지게 돼요. 반면 상대방이 공을 잘 못 던지면 그걸 잡으려고 노력하게 돼요. 공을 놓쳐서 뒤로 굴러가면 던진 사람이 미안해하잖아요. 그래서 상대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공을 잘 잡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집중력도 좋아지고 배려심도 생기고, 그런 게 캐치볼의 미덕인 듯해요.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한 야구 영화 <내추럴>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을 해요.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굉장히 목가적이고 낭만적이에요. 화창한 가을날 푸른 잔디 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없지요.

"캐치볼은 배려를 가르쳐줘요. 캐치볼을 하다가 공을 놓치면 공이 뒤로 계속 굴러가요. 그러면 그걸 잡으러 한참 뛰어가는 고생을 하게 되죠. 그래서 다음번에는 상대방이 잘 잡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던지게 돼요."

남우가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네요. 왠지 섭섭한 날이 늘어나는 때인 것 같아요.
부모의 딜레마죠. 아이가 잘 자라서 독립하길 바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올 수밖에 없는 어떤 거리감은 또 바라지 않지요. 지금은 야구 경기 관람도 아빠보다는 친구들하고 가는 게 더 좋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아들이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인생을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서운한 건 없어요. 저는 청소년기 문제는 사춘기라는 통과의례의 고통보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해 부족이 더 큰 원인이라고 봐요.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하루 중 잠깐이라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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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아빠인가요?
남우 친구들이 가장 많이 본 친구 아빠. 남우 반에 가서 아이들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도 있고, 학교 파하면 제가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니까 자주 보기도 했죠. 저의 초등학교 6학년 때를 돌이켜보면 아버지를 많이 어려워한 생각이 나는데, 저는 아들을 친구처럼 대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남우는 저를 어려워하는 모습이 눈곱만큼도 없어요. 저는 사람의 몸이 사춘기 때 급속히 성장하고 멈추는 것처럼 정신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10대 후반 정신연령이 죽을 때까지 가는 거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 버는 기술이 쌓이고 경험도 늘어가고 책임감도 더 생기겠지만, 기본 생각의 구조는 사춘기 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봐요. 그런데 남자 어른들은 일부러 나이 든 티를 내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더 권위적으로 보이려고 하고 놀이에서 멀어지려고 해요. 저는 마음도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애쓴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남우의 야구 경기가 있었다고요?
이 대회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주축이에요. 6학년인 남우가 출전할 수 있었던 건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 애가 소속된 종로구리틀야구단의 선수층이 너무 얇기 때문이지요. 남우가 출전해야 자동 실격패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속 선수가 겨우 9명이에요. 저는 야구장에 가서 계속 아이들 수를 세었어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딱 9명이라니. 종로구리틀야구단은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팀이에요. 주말에만 연습을 하고요. 반면에 1회전에서 맞붙은 구리시리틀야구단은 매일 맹연습을 하는 선수 팀이죠. 게다가 프로 선수들을 배출할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리틀 야구계의 전국적 강호라고 들었어요. 이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고 해야 마땅했죠.

야구에 관심 없는 아내를 동반한 이번 여행, 성공적이었나요?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날의 휴가를 물놀이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보냈어요. 서울에서 대구로, 전주로, 속초로, 속초에서 다시 서울로. 차로 이동한 시간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속초에서 경기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아내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죠. 이게 무슨 여행이냐 싶었을 거예요. 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야구에 대해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쩌다 야구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서-우리 부부의 첫 번째 데이트 장소조차 야구장이었죠-아들까지 야구에 물들게 하더니 여행까지 덥고 지루한 야구 여행이라니! 그럼에도 여행이 끝날 때마다 뭔가를 적립한 기분이 들어요. 그건 함께한 기억이죠. 여행하는 동안에는 온전하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게 야구 여행이건 관광이건 상관없이요. 힘든 순간이 있었어도 괜찮아요. 기억 속에서는 이 모든 것이 행복으로 남으니까요. 기억은 실제 경험이 아니어서 모든 것이 순화되죠. 이번 여행 역시 언젠가 행복하게 추억할 경험을 적립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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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for Fathers

가족과 야구를 즐기고 싶은 아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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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응원하는 팀을 만들어라
야구에 대해 아무리 잘 알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없다면 그 재미가 반감된다. 반드시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하고, 그걸 가족이 공유하고 응원한다면 가족의 문화가 형성된다. 응원하는 팀의 성적, 감독, 선수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가족이 공유하는 문화는 좋은 가구나 자동차보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아이가 잘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처음 야구를 하는 아이는 마치 처음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실망하지 말고 아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걸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작은 성공을 칭찬해주라
아이가 공을 맞추면 과도하게 감탄을 해준다. 간혹 아이가 공을 못 맞히면 네가 못한 게 아니라 아빠가 공을 못 던져서 그런 거라고 해라. 아이는 배트로 공을 맞히는 놀이를 좋아하게 된다.

야구장에 꼭 가서 야구를 관람하라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야구 역시 TV에서 보는 것과 야구장에서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푸른 잔디는 더 푸르러 보이고, 파란 하늘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하고, 저녁이면 석양이 물드는 하늘이 더 드라마틱해 보인다. 무엇보다 관중의 함성,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수비하거나 주루하는 모습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야구 규칙을 잘 몰라도 야구에 빠져들게 된다.

  • 2016.10.11
  • Editor 이은경
  • Photo 이주연
  • Film 최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