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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 Issue 15. 부부위기

아주 보통의 결혼

A Very Ordinary Marriage

  • 2019.12.23
  • Editor 성정아
  • Photo 이주연

결혼 14년 차,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성갑·원가희 부부는 1년간의 낭만적 연애를 통해 결혼이라는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예상한 상대의 모습이 대부분 정반대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적잖이 난감했다. 이들은 ‘연애를 통해 나의 반려자를 알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어쩌면 모든 결혼이 그렇다. 성격, 취향, 생활 습관, 경제관념 등 한 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 교집합을 찾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으랴. 두 사람의 우주가 하나의 가정을 이뤄가는 유쾌한 여정. 여기 아주 보통 부부의 현재진행형 결혼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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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주년 결혼기념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가희) 결혼기념일 선물이라고 집 담벼락에 핀 꽃을 잘라 꽂아놨길래 실소했을 뿐인데, 남편이 SNS에 내 표정에서 환멸을 읽었다고 썼더라고요. 음식물 쓰레기 봉투, 참치 캔과 같이 놓인 꽃을 가만히 보다가 이걸 또 굳이 식탁으로 옮겨서 각 잡고 사진을 찍어 올린 남편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졌어요. 남편의 보여주기식 삶을 지켜보며 사는 것도 내 기쁨이다 생각해요.(웃음)
(성갑) 들꽃은 이벤트의 서막이고, 결혼기념일 본 선물은 따로 있었어요. 아내가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흘린 ‘작고 심플한 반지’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걸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며 선물을 준비했죠. 그런데 “이 디자인이 최선이었어?” 하더라고요. 결국 직접 가서 바꿔 왔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올해는 생애 첫 집을 지었고, 16년 만에 직장도 퇴사했으니 좀 특별한 해인 것도 같네요.

집 짓다가 큰 싸움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사연인지 궁금해요.
(성갑) 기존 집을 철거하고 신축으로 짓는 거라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제가 직장 일이 많아지면서 신경을 못 썼어요. 최근에는 크게 다툰 적이 몇 번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아내 눈치를 살피는 중이에요.
(가희) 남편은 글 쓰는 사람이고 저는 그 글을 참 좋아해요. 그런데 그것만 잘해요. 조립하거나 물건을 고친다면서 망가뜨리기 일쑤고, 상황 판단력 같은 건 제가 더 나아요.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혼자서도 잘해왔는데, 어느새 집 짓는 일조차 제 몫이 된 거예요. 18평 땅에 7평 면적으로 3층을 올려 21평 남짓 되는 집인데, 위치가 외지고 예산도 적어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이 동네에 작은 집을 많이 건축하신 믿을 만한 소장님을 만나 순조롭게 공사를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스킵 플로어 구조로 설계했는데, 철거하고 보니 땅속이 다 바위인 거예요. 일부 설계를 변경하고, 바위를 깨부수고 정화조를 묻는 작업을 하느라 뒤늦게 고생을 했지요. 그렇게 몇 가지 이유로 준공검사가 아직 안 끝났고, 여전히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이 어려운 여건에서 이 정도로 집을 지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렇게 되면 공사비는 어떻게 되나요?
(가희) 계속 늘어나요. 기본적으로 공사라는 건 상황에 따라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는데, 남편은 그 부분을 이해 못 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직접 보니까 납득이 가는데, 남편은 사무실에만 있으니까 자꾸 제게 따져 묻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주로 싸운 부분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당신은 소장님 변호인이야?” 못 깎으면 가만히라도 있어야지 왜 옆에서 그 사람 편만 들어!”라면서. 그럼에도 결국은 제 결정을 따라주는 점은 늘 고맙게 생각해요.
(성갑) 자꾸 따지고 추궁하니까 아내에게 제가 또 하나의 클라이언트였던 거예요. 근데 결국 생각해보면 아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잖아요. 도덕적이고 마음이 넓고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이니까.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최후의 결정자는 항상 아내예요.(웃음)

성향이 비슷해서 잘 맞는 부부, 다른 부분을 맞춰가며 사는 부부가 있어요. 두 분은 후자에 가까운 거죠?
(가희) 사실 같은 건 거의 없고, 다른 생각으로 시작해서 맞춰가다 그냥 끝나요. 내게는 상식인데 그 상식의 기준도 우리는 너무 달라요. 예를 들면 건축비 산정에 대해서도 저는 사람을 믿고 가야 한다는 주의고, 남편은 일단 내고와 협상의 과정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식이죠. 참, 남편은 큰 집을 좋아하는데, 저는 작은 집을 좋아해요.
(성갑) 왜 작은 집이 좋아요? 답답하고, 지금도 짐 하나 정리하려면 머리가 아파요. 당연히 큰 집이 좋죠! 신혼도 멀쩡한 브랜드 아파트를 사서 시작했는데, 그때도 아내는 옥탑방이 좋대요. 일단 사진은 넓어 보이게 찍어주세요. 옹색하지 않게.(웃음)

두 딸이 엄마와 아빠의 다른 성격을 닮았나 봐요.
(가희) 작은 일도 모두가 알게 생색내며 부풀리는 남편 성향을 둘째가 딱 물려받았어요. 유지는“머리카락 자르고 대머리가 된 것 같아”라고 중얼거리곤 하죠. 다행히 애교 많은 강아지 같은 심성도 함께 물려받았어요.
(성갑) 둘째는 아직도 아빠가 최고인데, 첫째는 이제 5학년이 되니까 아빠는 ‘노답’이라고 핀잔 줄 때도 있어요. 첫째 유이는 무던하고 터프한 성격이 딱 이 사람을 닮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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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가희) 신혼 때 아파트 입주 시기에 맞춰 어머님 댁에 22개월간 들어가 산 적이 있어요. 첫째가 걸음마 할 때였는데, 일상이 합쳐지니 너무 힘든 거예요. 저희가 나간다니까 기뻐하셨으니 어머님도 힘드셨겠죠. 고부 갈등은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데 보통 남자들은 해결해주려고 하잖아요. 저희 남편은 제 말에 맞장구도 쳐주고, 세세히 들어주니까 힘든 시기를 잘 넘긴 것 같아요. 당시의 위기는 독립 상황이 아닌 게 가장 문제였던 것 같아요.
(성갑) 무조건 아내 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율이라도 할 수 있거든요. 물론 어머니를 사랑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아내가 서운한 순간이 많았을 텐데, 그 고마움과 믿음이 점점 쌓이니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파트 입주 이후 상황은 좀 나아졌나요?
(가희) 남편은 당시 개발이 한창 진행되는 뉴타운의 최고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사실을 정말 좋아했어요. 입주만 하면 우리가 당장 행복해질 거라고 여긴 거예요.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니까 저는 전혀 좋지 않더라고요. 그나마 아파트 상가 중 아주 작은 가게가 나왔는데 월세가 20만 원이래요. 가격도 싸고 그 작은 공간에서 뭐라도 해볼 수 있겠다 싶어 남편한테 퇴직금을 좀 당겨서 보증금을 내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어요. 과일 가게를 하고 싶다고. 과일은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예쁘잖아요. 재고가 되면 잼을 만들어 팔고, 장사가 잘되면 과일 도시락을 팔고, 이름도 ‘열매상회’라고 지어서 사업계획서까지 작성했어요. 그렇게 계약금을 걸고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주인이 그 공간을 쓰겠다고 해서 계획이 무산된 거예요. 그러면서 그 아파트에 대한 정이 완전히 떨어져버린 거죠.
(성갑) 한순간에 풀이 죽은 아내의 감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어요. 동네나 공간의 정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취향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아내가 찾아낸 누하동 한옥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아파트를 팔았지요. 당시 3억 후반 정도 주고 산 아파트를 1000만 원 손해 보고 팔았는데, 지금은 두 배 넘게 올랐어요.

부부는 경제 공동체인데, 경제적 손실로 위기를 겪는 사람도 있잖아요.
(성갑) 부동산 손실로 따지면 우린 벌써 이혼했어요.(웃음) 어제도 친한 동료들을 만났는데, 짓궂게 아파트값 손실이 정확히 얼마나 났는지 검색해보자는 거예요. 저는 세속적 사람이라 그 생각을 하면 여전히 속이 쓰리고 잠이 안 와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면 말해야 풀릴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얘기하면 아내는 다 지난 얘기 지금 해서 뭐 하냐고 나무라요.
(가희) 그때마다 그래요. 당신, 그래도 그 한옥에서 매 순간 좋지 않았냐, 친구들하고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고 툇마루에서 하늘 올려다보며 매일 행복해하지 않았냐.... 당시 아파트 입주를 위해 견딘 22개월의 시간이 제게 준 큰 교훈이 하나 있어요. 미래의 청사진 속에 행복은 없다. 지금 당장이 좋지 않으면 앞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단 하나의 인생 원칙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거예요. 한옥에서 보낸 시간들로 우리 삶이 훨씬 풍부해졌다고 생각해요. 손실이나 경제적으로 보면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는 아파트 왕국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틀에서 벗어나 살고 싶었어요. 우린 정말 행복했고, 그사이 두 아이도 건강하게 자랐고요.
(성갑) 아파트에 살았어도 애는 낳았겠죠.(웃음) 한옥에서 매일 마당 쓸고, 눈 오면 보일러 점검하고 그렇게 집 안팎을 돌보며 지냈어요. 처마 밑에서 비 구경도 하고, 바깥바람도 쐬고, 몸을 계속 쓰며 지내니 직장과 일상이 분리되고 더 건강해지는 느낌인 거예요. 《쓸모인류》 속 빈센트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게 참 별거 아닌데, 이런 별거 아닌 것으로 삶이 살아지는 것 같았어요.

2015년 출간한 《마당의 기억》이라는 책이 그 집에서의 이야기인 거죠?
(가희) 맞아요. 그런데 한옥 생활을 가장 좋아한 사람은 남편이었어요. 저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유난해요. ‘숙희’의 시작도 그랬어요. 효자동 작은 가게 자리가 나온 걸 보고 그 공간이 또 너무 설레는 거예요. 가격이 비싸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보증금 5000만 원을 지원해줬어요. 그럴때 적금과 저축을 좋아하는 남편이 참 고마웠지요. 그렇게 친한 언니와 동업으로 ‘숙희’를 시작했고 효자동이 참 좋구나 하면서 가게에 앉아 있곤 했는데, 어느 날은 또 그 앞 한옥이 전세로 나온 거예요. 23평 한옥 전세금이 2억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세에 나왔는데, 더 놀라운 건 화장실이 밖에 있대요. 저의 간절함에 남편은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을 마련해줬어요. 겨울이면 천장이 너무 낮아서 등도 제대로 펴질 못하는 화장실을 쓰며 2년을 지냈어요. 그러고 보니 자기는 왜 그때마다 내 말을 다 들어준 거야?
(성갑) 사랑하니까.(웃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인 걸 너무 잘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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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끌린 매력이 궁금해요.
(성갑) 연애 때 애교가 참 많았어요. 저렇게 외모가 여성스러운데 결혼하고 사주를 보면 다 남자 사주래요. 결단력 있고, 의리 있고, 잔말 안 하고, 참을성 많고....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사람인 거예요. 제가 아주 완전히 속은 거죠.
(가희)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본능이 그 시절 저를 애교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남편은 제가 그런 줄 알고 결혼했을 텐데, 저를 바꿀 순 없으니까.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근데 남편도 결혼하니 너무 달랐어요. 말이 정말 많고, 말하고 싶은 걸 참지도 못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그 점이 싫지 않고 오히려 즐거우니까 다행인 거고.(웃음)

14년의 결혼 생활을 하며 요즘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지 궁금해요.
(성갑) 결혼 10년쯤 되면 그렇게 잘 맞는 사람도 없고, 너무 잘 맞는 것도 비정상이에요. 결혼은 복불복이라고 생각해요. 연애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처럼.(웃음) 연애와 결혼 사이를 두고 깜짝 놀랄 만한 그림이 나올 수 있어요. 그 놀랄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결격 사유일지 모르니, 다른 이의 이혼이나 위기를 함부로 말할 순 없어요. 오랜 시간 부부의 사랑을 잘 유지하는 분은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노력’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운’에 더 비중을 두고 싶어요.
(가희) 저는 독립적 성격이라 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인생에서 결혼과 출산이 아주 중요한 것인데 진지하게 생각해보질 못했어요.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아기 갖고 그런 과정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뒤늦게 제 자아를 깨달았어요. 그래도 가정 내에서는 더 독립적으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내왔어요. 이것도 상대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어요. 성 역할에 대해 구분이 없고 가부장적이지 않은 남편은 딸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너무 좋은 아빠예요. 어떤 종류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또 항상 유쾌하잖아요. 시니컬한 저에게 이 사람의 유쾌함이 늘 환기시켜줘요.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것도 있는데, 저는 남편이 카페만 가면 자주 쓰는 ‘시그너처’, ‘오브제’ 이 두 단어가 여전히 너무 싫어요.

중년에 접어들며 스스로 위기라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성갑) 마흔쯤인가, 출근길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예요. 가을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을 청소부 아저씨가 쓸고 있었는데, 내가 지금 좀 약해졌구나 하고 감지했지요. 워낙 태생적으로 밝은 성격이라 오래가진 않았어요. 저는 16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즐겁게 직장 생활을 했는데, 점점 끝이 보이잖아요. 크게 도전하거나 성취하기에도 좀 애매한 나이고. 저는 기본적으로 에디터 일을 너무 좋아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이 수명을 단축한 게 아니었나 해요. 일에 너무 취해 살아서 장기적으로 보면 쉬어 가는 타이밍을 좀 놓치지 않았나 싶어요. 오랜 시간 글 쓰고 취재하는 즐거움으로 살았는데, 최근에는 잡지에서 디지털 콘텐츠 분야로 직장을 옮기면서 데스킹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디지털은 워낙 빠르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해서 해보고 싶다는 갈망도 있었어요.

가장 인상적이던 인터뷰이를 꼽는다면요?
(성갑) 이어령 선생님 인터뷰는 많이 긴장하고, 질문지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선생님 말에 완전히 빠져 듣기만 하다 온 기억이 있어요. 당시 〈럭셔리〉라는 매체 성격에 맞게 술술 풀어주셨어요. “불편함은 럭셔리가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사는 것이 럭셔리다” 같은 선생님의 문장은 내 삶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제가 원래 좀 외골수적 성격이 있는데, 에디터로 살면서 귀와 마음이 많이 열렸고, 어쩌면 아내를 더 이해하게 된 건지도 몰라요. 한 분이 더 생각나는데,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을 쓴 정민 교수님께서 “인생의 한 시기는 미친듯이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시기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흔들린다”라고 하셨어요. 회사를 그만두면서 “인생 길어. 까짓것 좋아하는 거 하며 살자”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퇴사 이후의 계획이 궁금해요.
(성갑) 내공을 쌓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어요. 처음에는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까 내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인터뷰어’나 ‘모더레이터’가 바로 내 정체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를 만들기에 내 손은 너무 곰손이고. 일단 사람을 많이 만나 특정 주제로 사람들을 엮어 책을 내보려고 해요. 크리에이터에 관심이 많으니까 ‘팔리는 크리에이터들의 대화법’, 퇴사 이후 삶의 고민을 담아 ‘프리랜서로 잘 먹고 잘 사는 법’, 일상에서 쓰임이 있는 공예에 대해 담은 ‘공예가 있는 풍경’ 같은 주제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사람이나 물건을 통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잘 이끌어내고 또 그것을 전하는 라이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저에게 가장 현실적인 진로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빠의 일상’ 같은 에세이도 구상하고 있어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행복한 글쓰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담벼락에서 구조해 키우게 된 고양이 이름 ‘핀’과 짝을 맞춰 1층에 한 점 갤러리 ‘클립’을 마련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구상 중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를 꼽는다면요?
(성갑) 아내에 대한 믿음. 애정보다는 이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는 것 같아요.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아이 둘에 앞으로 한창 돈이 들어갈 텐데, 사람은 다 그 조건에 맞춰 살 수 있다며 당장 그만두래요. 저보다 배포도 통도 큰 사람이에요. 오히려 제가 아내에게 더 의지를 해요.
(가희) 남편이 전형적인 남자는 아니에요. 말도 많지만 무뚝뚝한 저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거든요. 그런 남편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14 년을 잘 지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혼 생활이 잘 굴러가는 건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이렇구나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매번 부딪히는 똑같은 문제를 의아해하면서도 이제 연차가 쌓이니 좀 재미있는 거예요. 매번 어쩌면 그리 꼭 같은 부분에서 이럴까 싶지만, 대화를 통해 많은 부분 해소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성갑) 남자들은 비난받는 것을 못 견뎌 해요. 몇 날 며칠 문 닫고 들어가버리잖아요. 근데 저는 성격상 그게 안 돼요. 너무 답답하고, 부부 사이에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말도 정말 많잖아요. 100번 중 99번을 사과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무릎도 꿇었어요. (웃음) 싸울 때는 고성이 올라가는데도 아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좀 귀엽기도 하고, 웃음이 날 때가 있어요. 또 곱씹어보면 제가 잘못했기도 하고요. 그래서 먼저 사과해요.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자존심 세우지 않고, 꿍하지 않고 바로 사과하는 것이 저만의 비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2019.12.23
  • Editor 성정아
  • Photo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