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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홈캉스에 어울리는 편의점 맥주

Beer for your staycation

  • 2020.07.22
  • Editor. 조서형
  • Writer. 박진수
  • Photographer. 박진수

맥주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맥주로 사업을 했다. 일은 쓰디쓴 실패 경험으로 남았지만, 맥주는 변함없이 달다. 편의점에서 집어 온 캔맥주에 추억을 안주 삼아 홈캉스를 즐겨본다. 모던 파더 박진수의 여름 휴가를 위한 픽은 꿀이 들어가 달콤한 크래프트 비어, 상상페일에일이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만 즐겨야 한다.

그런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에 귀 기울이기에는 맥주를 너무 좋아했던 걸까. 결국 맥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비어스픽’은 맥주 문화 행사 기획사다.  K-pop이나 여행, 축구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문화 예술과 맥주를 접목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다. 문학동네와 ‘소설심취’라는 이름으로 책 속 주인공이나 작가와 어울리는 맥주를 매칭하기도, CGV와 영화 스토리, 감독, 주인공과 어울리는 맥주를 연결하기도 했으며, 광장시장 빈대떡, 모범갈빗살 등 한식과 맥주의 페어링 행사까지 무려 80회에 달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1년 반의 짧은 기간을 고려하면 지금 봐도 참 열심이었다. 그랬던 나의 비어스픽은 올해 5월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한 추억만을 남기고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어스픽×북클럽문학동네 북페어링 프로그램 '소설심취'
비어스픽×CGV아트하우스 무비페어링 프로그램 '영맥담화'

쓰라린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여행이라도 떠나 비현실적인 풍경에 묻혀볼까 했더니 하필 때맞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축 처져 집에만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내게 ‘홈캉스’를 선사했다. 넷플릭스에서 지금 뜨는 콘텐츠를 둘러보니 최근 주변 사람들 대화에 자주 오르내리던 핫한 콘텐츠들이 죽 늘어선다. 돌이켜보니 지난 7년간 사업을 벌이거나 회사에 다니며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느라 영화 한 편 볼 틈이 없었다. 뭘 그렇게까지 팍팍하게 살았나 싶다.

내가 만든 맥주 서비스 ‘비어스픽’은 종료했지만, 맥주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림도 없지. 영화 시작 전 맥주를 찾으려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가 없다. 더운데 나가서 맥주를 사 와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도저히 맥주 없이는 홈캉스를 즐길 수 없다는 판단에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을 향한다. 알록달록 종류별 맥주가 솔찬히 들어선 편의점 냉장고를 들여다보다 흠칫 놀란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들을 여기서 볼 수 있다니. 이내 맥주 하나를 집어 든다. 핸드앤몰트(Hand and Malt)의 상상 페일 에일! 들뜬 마음으로 4캔을 덥석 집어 온다. 건어물 안주와 맥주를 세팅하고 자리를 찾아 편안한 자세를 잡고 영화를 재생한다. 문득, 맥주 캔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달콤한 상상, 페일에일이 되다”

영화를 보다 말고 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발리는커녕 국내 페스티벌도 갈 수 없는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해 쌓아둔 추억이 있다. 형과 단둘이 20일 간의 호주 여행을 떠나 광활한 자연에 흠뻑 젖던 일, 감각적이고 깔끔한 인테리어에 홀린 듯 도쿄 에비수 역부터 다이칸야마까지 걷던 일, 상하이 유학생 시절 토요일 아침마다 혼자 가방을 메고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던 일,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감명받아 지도책을 쥐고 18일 간 오토바이로 전국 일주하던 일, 신혼여행 중 찾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에서 호날두와 메시가 각각 두 골씩 넣은 일, 스타트업의 매력에 빠져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 등 실리콘밸리를 돌아다니던 일까지 새록새록 흘러나온다. 에피소드별로 당시 마시던 맥주를 떠올리다 보니 손에 쥔 맥주도 꿀꺽꿀꺽 잘 넘어간다. 비록 혼자 홈캉스였지만 아내와 아이 없는 고요한 시간, 그동안의 기억을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꽤 괜찮은 바캉스가 되었다.

상상페일에일은 꿀을 넣어 만든 달콤함과 청량감이 돋보이는 맥주다. GS25, CU, 미니스톱, 이마트24 등 편의점에서 4캔 만원에 살 수 있다. 어느 안주에나 잘 어울리지만 교촌 치킨 허니콤보와 함께 할 때 상상도 못 할 맛을 뽐낸다.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추억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덧 꽤 시간이 지났나 보다. 외출했던 아내와 아이들이 복작복작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 두어 편 보는 짧은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다. 아이들을 씻기라는 아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취해 잠에 든다.

+ 핸드앤몰트에서는 브랜드 모토인 '즐거운 상상, 현실이 되다'를 재미있게 공유하는 'Give Me 상상 챌린지' 가 진행 중이다.

모던 파더 | 박진수

TV 광고, 뮤직비디오, 바이럴 영상, 기업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안 프로덕션’의 대표. 맥주가 술을 넘어 문화가 될 날을 바라며 맥주 문화 행사 기획사 ‘비어스픽’을 운영했다. 비어스픽은 접었지만, 여전히 요리보다 맛있고, 영화만큼 흥미로운 다양한 맥주와 문화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6살, 8살 장난꾸러기 아들 둘을 둔 아빠로 좋아하는 브랜드를 사고, 입고,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 2020.07.22
  • Editor. 조서형
  • Writer. 박진수
  • Photographer. 박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