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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딸바보가 되었나

How Fatherhood Has Changed My Life

‘딸바보가 그렸어’ 김진형 작가, 미혼 시절부터 그가 공감 능력과 포용력이 넓었던 건 아니다.

  • 2016.10.18
  • Editor 최혜진
  • Illust 김진형

김진형은 10년 넘게 광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트디렉터다. 쉼 없이 생각 공장을 가동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축출하는 일을 하는 광고 업계 사람들이 그렇듯 김진형도 확고한 자신만의 취향과 취미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위안을 얻었다.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로 내려가 직접 조립한 RC(Radio Control) 자동차를 작동하고 무선조종 헬기를 띄우는 걸 삶의 큰 기쁨으로 알던 시절이 있었다.

돈과 시간을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생활은 2010년 딸아이가 태어나고 완전히 바뀌었다. 총각 시절의 그가 보면 어이없다고 느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특별히 의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각이 점점 넓어졌다. 이웃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까지 마음이 쓰이는 사람으로 서서히 변화해갔다. 타인들을 단절되어 흩뿌려진 점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관계망 안에서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김진형은 이 변화가 제법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주말에 늦잠 자기 바빴던 사람이 놀아달라는 딸의 보챔에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것이, 성질나면 못 참는 성격이었던 자신이 아이 사진을 바라보며 화를 죽일 줄 알게 된 것이,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다른 부모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딸바보라서 가능했던 성숙과 확장과 변화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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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가 그렸어>가 워낙 평등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아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셨습니다. 반대로 남편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던 적도 있고요. 미혼 시절부터 가정적인 면모를 지닌 남자였는지 궁금하네요. 
총각 시절엔 자기중심적이었어요. 연애할 때도 아내보다는 저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누고 베푸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남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인정받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죠. 극심한 경쟁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내가 인정받으려면 남을 이겨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뭔가를 더하고, 꾸미고, 성과를 내어야 사람들이 저를 찾아주고 좋아해 줄 거란 생각을 했죠. 사실 그런 압박감은 한국 사람이라면 다들 느끼는 것 같아요. 경쟁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사고방식이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는 제가 아빠라는 사실 하나로 저를 사랑해줬습니다. 제가 뭘 잘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따지지 않고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저는 전적으로 믿어주었죠. 그 사랑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저를 총각 시절의 제가 본다면 아마 “말도 안 돼!”라고 소리칠 겁니다. (웃음)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출산 전까진 스스로 원하는 가정의 모습이나 아버지상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별생각이 없었기에 크게 부담도 느끼지 않았고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줄 알고 그렇게 했죠. 그런데 아이가 막상 세상에 나오니 무게감이 확연히 달라지더군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부담스럽게만 다가오는 변화는 아니었고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쪽으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딸을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게 제 결론이었어요. 그래서 <딸바보가 그렸어>를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우선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늘 좋아했고 나중에 아이에게 “네가 어렸을 때 아빠랑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어”라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로부터 특별히 보고 배운 양육 태도가 있나요? 
우리 윗세대 아버지들이 대개 그렇듯 일하느라 바쁘셔서 늘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였습니다. 대신 유머 감각이 많은 편이었어요. 늦게 퇴근해서 잠깐 놀아줘도 무척 재미있게 집중해서 놀아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몸담고 있는 광고 업계가 개인 시간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보고 배워서 그런지 저도 시간이 될 때 아이와 집중적으로 확실히 노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랑 제대로 놀려면 어른으로서의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물론 타고난 성격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저는 타고난 성격이 밝고 활발한 편이라 애처럼 노는 게 쉬운데, 안 그런 성격을 가진 분들도 분명히 계실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자녀를 기분 좋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면 원래의 내가 가진 한계를 훌쩍 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요. 부모라는 게 그렇잖아요. 자식이 웃는 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파서 울면 속이 허물어지는 격한 감정을 느끼는 게 부모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향해 웃어주는 딸이 조금이라도 더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강렬해서 자연스럽게 애처럼 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딸에게 재미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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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가 그렸어>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 중 하나가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곧 나를 키우는 것이라는 말인데요. 아버지가 되고 나니 어떤 순간에 자신을 성숙시킬 필요성이 생겼나요?  
제가 사춘기였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으면 ‘엄마 아빠는 뭘 얼마나 잘해서?’ 하는 반발심이 들곤 했습니다. 아마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제 딸도 크다 보면 엄격하게 훈육을 해야 할 순간도 분명 올 거고, 그럴 때 ‘아빠는 얼마나 잘해서?’ 생각할 수 있겠죠. 저는 최대한 아이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이래라저래라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보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아이가 가졌으면 하는 태도나 자세를 제가 먼저 보여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따라 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유전자의 힘은 정말이지 강력해요. 일상 속에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이의 모습 안에서 순간순간 제 모습이 보이거든요. 저의 장점이 아이 안에서 보일 때 더없이 행복하지만, 제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 콤플렉스, 단점들이 딸에게서 보일 때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고요. 제가 먼저 그런 모습을 보완하면서 아이에게는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육아는 육아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주변의 미혼 후배들이 결혼과 출산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오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이나 아이 없는 삶이 부족하고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행복을 그들도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안 가 본 해외 여행지를 누비고, 멋진 물건을 쇼핑하면서 자유롭게 누리는 삶도 물론 행복이겠지만, 아이가 선사하는 행복감은 완전히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저도 총각 땐 장난감과 자동차에 매료되어 취미 생활을 꽤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걸 안 해도 행복합니다. 신기한 변화죠. 나와 닮은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가 웃고 우는 매 순간의 감정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덜컥 겁이 나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잦죠. 하지만 아이가 없었던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해본다면 지금의 제가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라는 이 신비로운 감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이는 제가 아빠라는 사실 하나로 저를 사랑해줬습니다. 제가 뭘 잘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따지지 않고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저는 전적으로 믿어주었죠. 그 사랑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앞서 아이가 부모를 향해 보여주는 맹목적 신뢰와 사랑 덕분에 경쟁적인 자기중심적 태도를 내려놓고 확장된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딸바보가 그렸어>의 ‘스킨십’ 편에서 그런 아이의 사랑을 표현하셨죠. ‘가끔은 아빠가 너를 안아주는 게 아니라 네가 아빠를 안아준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쓰셨어요.
직장에서 온종일 시달리다 완전히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제 딸이 늘 안아주면서 인사를 하는데요. 그게 우리 집의 인사 습관이거든요.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입니다. 아이를 한 번 꽉 안고 나서 “유치원 잘 다녀왔니? 힘들지 않았어?” 이렇게 질문할 때 종종 저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은 기분도 느낍니다. ‘아, 오늘 하루 나 회사에서 잘 보내고 왔나? 나 너무 지치진 않았나?’ 이렇게요. 그렇게 서로 안부를 나누다가 아이가 한 마디씩 던져주는 말들, 이를테면 “아빠 힘내세요.” 같은 말들이 누군가에겐 뻔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겠지만, 저에겐 진실로 큰 힘이 됩니다. 들어도 들어도 힘이 나는 말이에요. 아이가 힘내라고 말하면서 저를 안아줄 때, 피곤에 절어있던 영혼에 다시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듭니다. 술을 마시거나 취미 생활을 혼자 즐기면서 풀리는 스트레스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저만의 치유법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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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 <딸바보가 그렸어 : 엄마의 일기장>은 광고 카피라이터인 아내분이 글을 쓰셨습니다. 남편에서 아버지로 성장해갈 때 아내분으로부터는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제가 지금 같은 아버지가 된 건 100% 아내 이현주 작가의 영향입니다. 아내가 결혼 전부터 봉사도 많이 다녔고 심성이 선했어요. 저랑은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래서 더 끌렸고, ‘이 여자라면 나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완할 수 있겠다, 배울 게 많겠다.’ 생각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났더니 적어도 아내에게 창피한 남편이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아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그 아이에게도 저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요즘 서점에 가면 책들이 지나치게 ‘나’에만 함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내와 딸 덕분에 저라는 사람이 완전히 바뀐 셈이죠. 

책 속에서 따님 솔이도 그런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아이들은 쉼없이 질문을 합니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 많은 부모가 교육적인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이의 질문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강박관념을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 앞에서 멋진 부모가 되고 싶고, 아이 질문에 척척 해답을 제시하는 듬직한 아빠가 되고 싶죠.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난이도 높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저는 영어에 몹시 취약한데, 요즘 딸 아이가 영어를 배워와서 자꾸 영어로 뭘 묻는답니다. 아빠도 모르겠다고 답하면 “아빠는 왜 그런 것도 몰라?” 라며 무시하기도 하죠. 그러면 검색을 함께 하면서 말합니다. “응, 아빠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많이 안 해서 그래. 너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많이 하길 바라.” 이렇게요. (웃음) 어떤 부모도 아이의 모든 질문에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인 건 아이가 던지는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만 들어도 아이들은 만족해하고 행복해한다는 겁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바쁘고 힘든 날 아이가 집요하게 말을 걸면 때때로 욱하거나 아이 질문을 무시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노력하며 배워가는 중입니다. 진심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요. 진정성 있는 마음 자세로 아이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이 육아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하루하루의 일상을 포착해 그림과 에세이라는 결과물로 창작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해보고 싶다고 느끼는 부모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 그림과 아내의 글에 많은 분이 공감한다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어떤 표현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기저귀를 가는데 아이 응가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는 하나의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키는 건 스스로가 느낀 감정이에요. 어떤 사람은 ‘응가 냄새가 너무 나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로 끝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응가가 노란색이더라. 육아하느라 집 안에 온종일 갇혀있던 엄마는 마음의 눈으로 민들레를 보았다, 바깥세상이 그리워졌다’라고 스토리텔링을 할 수도 있는 거죠. 일상 속에서 겪고 보는 수많은 사실 가운데 나의 감정으로 살을 붙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 그게 스토리텔링의 시작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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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네이버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인스타그램에 아내와 함께 3년째 육아 에세이를 그려가면서 공동 육아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시대의 딸 바보. 현재 광고대행사의 아트디렉터, 굿네이버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재능 기부 캠페인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펼치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 『딸바보가 그렸어』와 『딸바보가 그렸어, 엄마의 일기장』이 있다.

  • 2016.10.18
  • Editor 최혜진
  • Illust 김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