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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 Issue 4. 기록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Making art out of everyday life

  • 2017.02.24
  • Editor 최혜진
  • Photo 이주연
  • Film 최소명

생각해본다. '일상'이라는 단어에 연관 검색어를 지정해준다면 나는 어떤 말을 붙일까. 생활, 생계, 살림, 실용, 반복… 팍팍하고 각진 단어들만 떠오른다. 낭만적, 영감을 주는, 신선한 등 풋사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 참 좋으련만, 생계를 유지하고 일상의 톱니바퀴를 굴리는 일이 몹시 수고롭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나이가 됐다.

그래서일까, 예술가들이 어떤 자세로 일상을 보내는지 시시콜콜 알고 싶다. 그들도 하루 세끼 밥 먹고, 애들 뒤치다꺼리하고, 음식물 쓰레기 비우고, 머리카락으로 꽉 막힌 수챗구멍 뚫고, 배우자의 투정도 꾹 참고 들어주고, 남은 통장 잔고를 셈하며 살 텐데, 그 와중에 어떻게 생의 감수성을 잃지 않고 영감을 흡수해가며 사는 걸까?

나무를 만지는 조각가 이상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사유 공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예술가다. 동시에 두 자녀를 씻기고 먹이고 기르는 책임을 짊어진 아버지, 그러니까 생활인이다. 그럼에도 이상윤은 일상과 예술이 대척점에 있지 않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창작의 토양이 실은 매일의 반복적인 생활 안에 있다고 믿고 살아낸다. 하루씩의 삶을 묵묵하게 쌓고 비운다. 그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두 팔과 다리에, 사유 공간 어딘가에 기록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예술가로서, 아버지로서 아는 지혜가 모두 나무에서 왔다고 고백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재료 가운데 왜 하필 나무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0여 년 전, 대학생 때 조소과 실습실에서 물끄러미 나무 작업대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조소과에서는 별의별 무거운 재료를 다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대가 굉장히 튼튼해요. 이미 30-40년 전부터 써온 작업대였죠.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학생이 사용한 흔적이 나무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물감이 묻고, 파이고, 상처 난 자국들을 보면서 저는 나무에 대한 신뢰감을 느꼈습니다. 외부에서 단단한 뭔가가 충돌해올 때 스스로 파이면서도 잘 버텨주는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걸 너무 쉽게 바꾸는 시대라서 그런 시간의 흔적, 모진 때, 흉을 담고 있는 나무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죠. 나무는 오래될수록 맛있거든요. 오래되면 추레해지는 전자 제품과 달리 나무는 때가 낄수록 고색을 냅니다. 또 나무는 인류 문명 속에서 오랫동안 중간재 역할을 해왔어요. 쇠와 돌 같은 날카로운 재료로 도구를 만들 땐 손잡이는 나무로 만드는 식이었죠. 날카로운 세계와 사람 사이에서 중화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늘 나무가 해왔습니다. 단단하면서도 구부릴 줄 아는 나무의 성질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신혼집을 꾸밀 때 직접 나무를 깎아서 대부분의 가구를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결혼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새 출발점이고, 동반자인 가족이 살아갈 공간이니까 단순히 물건을 구입해서 채우는 것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창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다 만들어주고 싶어서 화장대, 식탁, TV대, 좌식 소반 등을 만들었고요. 그때 소반의 매력을 깨우쳤어요. 소반이 좋은 건 평등성 때문입니다. 의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가족 없이 자연스럽게 생활의 중심이 되어줍니다. 또 개인적으로 부엌이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조금 특별하게 싱크대를 나무로 만들었죠. 저는 솜씨를 자랑하기 위한 창작보다는 쓰임이 쌓이는 나무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쓰임이 쌓인다”는 표현은 참 멋진 말이네요. 
저희 가족이 지금 쓰고 있는 소반이 그 말을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여섯 점 정도의 소반을 만들었는데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4인 가족이 되니 큰 밥상이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2개월 정도 성심성의껏 공을 들여서 커다란 소반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완성하자마자 아이들이 매직펜으로 시원하게 그 위에 낙서를 하더군요. 저에게는 작품이었는데 솔직히 당황했죠.(웃음) 체념하고 그냥 사용하다보니 어느 순간 낙서가 마모되어 서서히 옅어졌습니다. 밥상이자 아이들 놀이터, 포토그래퍼인 아내의 컴퓨터 작업 책상, 저의 주안상 등 다용도로 사용해서 별별 생활의 흔적이 다 묻었죠. 고기 기름, 고추장, 크레파스 낙서, 아이들이 붙여놓은 스티커 등이 쌓였습니다. 또 밥을 먹을 때마다 깨끗하게 닦아냈기 때문에 쌓이기만 한 게 아니라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이런 반복이 결국 우리 삶의 기록이라고요. 조형미나 완성도, 솜씨에만 예술성이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사유하는 것에서도 예술성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쓰임 안에서 순수한 예술성을 도출하는 거죠. 실제로 저희 집에서 사용한 낙서 가득한 소반이 주요무형문화재 소목장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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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낙서, 고추장 자국 등이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제 작품을 신줏단지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혼신의 힘을 다해 솜씨를 극대화한 작품을 만들었다면 아무도 거기에 흠집을 남길 수 없게 보호하고 싶겠죠. 하지만 저는 솜씨를 믿지 않아요. 솜씨는 위계를 조성합니다. 높은 기교와 엄선한 도구와 여러 가지 좋은 재료로 만든 작품은 누구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작가로서 제 느낌과 의도를 타인과 향유하는 데 관심이 많은데, 높은 기교가 공감대 형성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의 기술로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낸 민속 예술의 전통 안에서 작업하길 즐깁니다. 또 모든 나무에는 고유의 기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질을 잘 살피고 타협을 해야 해요. 일방적으로 원하는 것만 취하면서 기교를 뽐내는 건 나무의 본성과 맞지 않는 방식이에요.

“나무를 오래 다뤄서 그런지 신혼 초에 아내와 충돌이 있을 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금 전, 촬영하면서 지나가듯 하신 말씀입니다. 나무를 만지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소통의 지혜가 있나요?
나무는 제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일단 나무마다 결이 달라서 나무가 거부하면 저는 멈춰야 합니다. 각각의 나무가 본래 생겨먹은 대로 깎을 수밖에 없어요. 구상한 대로 작품을 완성했다 해도 나무는 언제든 스스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휘거나 갈라지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나무는 인간적입니다. 인간적이기에 타협하고 눈치를 봐야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커다란 기계를 써서 일방적으로 다루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혼하고 아내와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맞춰갈 때,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과 씨름할 때는 흡사 기질 강한 나무와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제 한계를 받아들이며,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자세. 나무가 알려준 이런 태도가 제 모든 삶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불필요한 장악을 경계합니다.”

만약 자녀들이 부족한 점을 느끼는데 개선하려는 의지 대신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뭐 어쩌겠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긍정적 의미의 ‘순응’이 아니라 부정적 ‘체념’ 혹은 ‘방치’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오히려 방치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요즘처럼 자기 본성의 속도대로 사는 게 뭔지 모르는 시대일수록 기다림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망치는 건 오히려 조급함이죠. 아이들 스스로 느낄 때가 분명히 오니까 그때까지는 방치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냥 두고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일례로 저는 미술을 늦게 시작했습니다. 스물다섯 살 때 시작했죠. 입학은 농업생명과학대에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거의 제 삶에 간섭하지 않으셨지만, 대학 입학 때는 강력하게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권하셔서 점수에 맞춰 진학한 거죠. 그랬지만 결국 제 본성대로 미술을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어차피 자식의 인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부모로서 저는 조급증을 버리고 아이들 본성이 자연스럽게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기를 기다려주려고 합니다. 단, 아이들은 부모를 관찰하고 따라 하니까 부모인 저 스스로를 단속하려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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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예술가는 어떤 시선으로 일상을 살기에 새록새록 아이디어를 떠올릴까 궁금합니다.
예술가는 마음속에 추상적 공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어떤 창작을 할 것인가 상상하죠. 그런 상상의 끈을 일상 속에서 항상 여유 있게 이어가진 못합니다. 아이들과 씨름할 땐 생각이 툭툭 끊기고, 생업을 위해 강의할 때는 전혀 다른 모드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예술가로서 저만의 시간이 부족하죠. 예술이 항상 그렇지만 당장 생존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이를 기르고 생활을 유지하는 쪽으로 시간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으려 노력하지요. 저희 가족이 사는 모습 자체,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 자체, 매일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기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작품 테마와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요.

평소에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메모하시나요?
길을 걷다 좋은 장면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나면 메모를 합니다. 하지만 그걸 다시 보진 않아요. 기록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기록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음에 가볍게 감탄사를 찍어둔다는 생각으로 사진이나 메모를 남기죠. 하지만 그런 기록을 보면서 작품 구상을 하진 않습니다. 그 안에 박제된 생각이나 순간은 이미 흘러간 것이니 제가 거기에 사로잡히는 순간, 현재진행형의 발상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저 제 내면 어딘가에 궤적이 남는다고 믿고 가볍게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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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새롭고 신선하고 경이로운 것에 끌리는데, 작가님은 일상성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보통은 일상이 변하지 않고 반복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절대 반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지만 그 모습이 결코 하나하나 같지 않아요. 우리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는 시시각각 감각과 감정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사람입니다. 어떤 날은 설거지를 하는 게 너무 지겹고 화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날은 똑같은 설거지를 하는데 음악을 켜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기도 하고요. 설거지라는 행위는 같아 보이지만 이 두 상태가 같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는 나무 작업을 할 때도 느낍니다. 저는 늘 수공구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데요, 항상 능숙하게 이뤄지던 끌질이 어떤 날은 너무 서툴게 되고, 어떤 날은 선 하나 긋는 게 잘 안 풀리는 날도 있어요. 대패질도 마찬가지고요. 제 몸과 마음, 감각 상태가 매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걸 인정하고 보면 일상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몸의 감각이 매일 똑같지 않다는 말씀은 정말 동의합니다. 
조각은 쉽게 말해 몸 쓰는 일인데, 여기에서 몸은 그날의 날씨, 순간의 기분, 제 나이 등 다양한 조건이 다 반영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미술가로서 제 생각과 작품을 연결해주는 게 제 손입니다. 붓이나 끌, 대패 등 도구를 손으로 잡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제 몸을 가장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미술 활동이죠. 저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인간으로서 재미와 삶의 가치를 다행히 잘 즐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구적 인간의 몰입감이라고 할까요. 도구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요리를 하고, 캠핑하는 일은 인류의 오래된 본성이에요. 특히 망가진 걸 고칠 때, 더러운 곳을 청소할 때의 희열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생산적인 정신 상태를 만들어주지요. 청소하는 마음의 숭고함은 제 아이들에게도 꼭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청소하는 마음의 숭고함이라니 흥미롭네요. 
흔히 귀찮은 일이라 생각해서 가급적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길 바라죠. 하지만 창작자로서 저는 청소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일례로 저는 작업이 달아오르지 않으면 작업실 청소부터 하는데요, 그러면 작업할 마음의 준비가 되더군요. 내 몸을 씻고 바닥을 청소하는 행위를 할 때 마음가짐이 자연스레 생산적이고 건설적이며 긍정적으로 변해요. 숭고한 정신 작용이죠. 또 청소는 하고 나면 재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몰두할 때의 재미를 의미하고요. 보통 청소를 가장 귀찮고 하찮은 일로 생각하는데, 청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숭고한 정신의 리셋 행위라고 봅니다. 재벌 아들도 청소를 스스로 하면 마음이 건강해질 거라고 믿어요. 두 아이에게도 이런 태도를 물려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정신적 유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다림입니다. 당장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작용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나무를 통해 배웠습니다. 당장의 좌절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순리를 따르면 결국은 일이 해결된다는 사실도 나무를 통해 배웠고요. 나무가 제게 가르쳐준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바깥 세상, 타인,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 순응하고 협의하는 자세, 상호작용 하면서 관계를 맺어가는 태도를 제가 먼저 솔선수범해 보여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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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4
  • Editor 최혜진
  • Photo 이주연
  • Film 최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