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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위 다섯 가족 #그린봄푸름모험일지

  • 2020.05.14
  • Editor. 조서형
  • Writer. 김예찬
  • Photographer. 김예찬

배도, 캠핑도, 목공도 모르지만 아빠는 오늘도 아이 셋과 아내를 태울 카누를 만든다.

“카누 타 본 경험이 있나요?”

카누를 만들겠다고 겁도 없이 카누 공방을 찾았다. 나는 여태 카누잉 경험은커녕 카누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닿지 못할 곳에 있는, 굽이굽이 구석진 숲길을 따라 찾아 들어선 공방이었다. 공방 앞에는 반질반질 잘생긴 공방장님의 우든 카누가 놓여 있었다. 카누를 실물로 마주한 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카누와 사랑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이전에 카누를 타 본 적이 있으세요?”
“아니요. 한 번도 타 본 적 없습니다.”
“아, 그럼 캠핑을 좋아하시나 봐요?”
“아니요. 캠팽도 한 번도 해 본 적없어요.”
“그럼 목공은 좀 해보셨나요?”
“아니요. 목공도 처음입니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서도 도심의 호텔보다는 외곽의 에어비앤비를 선호한다. 요즘 캠핑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없다지만, 바로 그 캠핑 한번 안 해본 사람이 바로 나다. 목공도 처음이었다. 자잘한 못질 경험을 빼면 뭘 자르고 다듬어 만들어 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공방장님과 카누 제작상담을 하면서 공방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캠핑을 비롯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거나, 혹은 목공으로 뭘 좀 만들어 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접점이 없는 사람이 대뜸 찾아와 카누를 만들고 싶다고 하니, 게다가 이제 오픈한지 한 달도 안 된 공방의 첫수강생이었으니, 공방장님 얼굴에 띈 당황한 기색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배를 소유하고 싶었다

내 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의 시작은 201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배를 만들어 한강을 유랑하고 탐사하는 아티스트 듀오 ‘랑랑’의 의뢰로 영상 촬영을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단둘이서 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는데, 별다른 승인 없이도 한강에 배를 띄울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물 위에 떠 있을 때의 ‘그 기분’을 알게 되었다. 꽉 막힌 강변북로의 불빛과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유유히 표류하던 그 기분이 잊히지 않고 오래오래 다시 떠올랐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참을 배를 알아보는 데 시간을 쏟았다. 차에 싣고 다닐 수 있는 크기면서 물 위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므로 내가 소장할 수 있는 배는 ‘카누’라는 나름의 답에 도달했다. 카누에 필요한 장비, 카누를 탈 수 있는 장소까지 리스트를 만들어가며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 카누를 타고 물에 떠 있는 상상을 했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우리 부부는 갓 태어난 첫째 그린이를 돌보느라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급박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끼니 한 번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데 배를 살 순 없었다. 그렇게 둘째 봄이가 태어났고, 셋째 푸름이까지 생겼다. 어느덧 내 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마치 전생의 추억처럼 까마득해져 갔다. 아빠가 된 내겐 아이들의 세 끼를 챙기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 외 시간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돈을 버는 데 집중해야 했다. 

아웃도어 키드 그린, 봄 그리고 푸름

프리랜서의 삶을 살다 보니 아이들과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대부분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지만, 여전히 뭉클한 순간, 우리만의 행복의 기억들이 쌓여간다. 이제 막 목을 가누기 시작한 아이에게 처음으로 나뭇잎을 보여줄 때, 킥보드 하나를 같이 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골길을 따라 등원할 때, 하원 후 동네 아이들과 온갖 괴성을 지르며 놀이터를 누빌 때, 행복이 우리 앞에 있었다. 아이들과 놀기 시작하면서 내 어린 시절의 놀이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손바닥만 한 잎사귀와 돌멩이를 모아 쌈밥을 만들다가도 금새 돌은 독약이 되고 잎은 약초가 되어 다음 놀이로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가보지 않은 곳은 모두가 모험의 길이었다. 번갈아 가며 대장을 맡아가며 다음 목적지를 찾아 동네를 들쑤시기도 했다. 그저 흙 바닥에 앉아 개미만 바라보면서도 한참을 놀았다. 

대개 좋은 날들은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건 그쯤이었다. 육아로 지옥과 천국을 오간 날은 밖으로 나갔다. 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밖에서 보내는 날이 늘어갈수록 천국의 시간은 조금씩 커졌고, 함께하고 싶은 일들도 많아졌다. 아이들이 지금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아이라서 상상하고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세계에 같이 비집고 들어가서 함께 놀고 싶어졌다. 그 생각의 끝에 카누를 떠올렸다. 카누에 올라탄 다섯 식구의 모습이 구체적인 그림으로 다가왔다. 거창한 모험이 아니라도 괜찮다. 고요한 호수 위에 떠 있다가 아무도 없는 숲에 내려 새들처럼 재잘거리다 돌아오는 그런 모험이면 참 좋겠다. 개인적인 카누에 대한 욕심이 돌고 돌아 ‘가족 모험’이라는 명분으로 불이 붙고 말았다. 

그렇게 겁도 없이 카누 공방에 발을 들였다. 카누 공방 ‘쿤스트마쿤’의 첫 수강생이 된 나는 열의에 넘쳤다. 공방장님은 자신의 첫 카누는 한 달을 꽉 채워만들었다고 하며, 초보자인 나에게는 제작 기간을 석 달 쯤으로 잡아보자 했다. 그렇게 캠핑도 목공도 안 해본 내가 카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내도 세 아이도 손을 거들었다. 날이 더워지기 전에 우리 다섯 식구를 위한 배를 띄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모던 파더 | 김예찬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광고 영상, 모션 그래픽 등 영상 작업을 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PEBS’의 디렉터이자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험'을 키워드로 여러가지 일을 벌리는 아빠 모험가. 김예찬 1,2,3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아빠를 닮은 세 아이가 등장하는 유튜브 <우당탕탕 삼남매 vlog>와 인스타그램 #그린봄푸름모험일지 를 운영 중이며, 가족을 다음 모험으로 이끌 카누를 만들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장인 어른과 사위가 함께 하는 아이슬란드 여행 이야기를 통해 볼드저널 10호 '나이 듦이라는 변화를 해석하는 법' 컬럼에 소개되기도 했다.


  • 2020.05.14
  • Editor. 조서형
  • Writer. 김예찬
  • Photographer. 김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