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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위 다섯 가족 – 일 년 간의 카누 제작기

  • 2020.05.22
  • Editor. 조서형
  • Writer. 김예찬
  • Photographer. 김예찬

공방에 도착하면 다시 힘이 난다. 온종일 머리를 쓰는 내게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카누를 만드는 시간은 다행히도 휴식과도 같다.

2019년 4월 23일, 뼈대를 만들어 세우는 데서부터 카누 만들기는 시작된다. 카누의 선형에 맞춰 만든 몰드를 작업대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고정하면 뼈대가 세워진다. 마치 고대 공룡의 뼈를 보는 듯 웅장하다. 겨우 두 번의 수업 만에 만들어진 배 모양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카누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차올랐다.  

여름이 오기 전에 작업을 끝내고 싶었는데 갑자기 일이 들이닥쳤다. 프리랜서에게 일이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것’. 다음은 기약할 수 없기에 힘차게 노를 저어야 했다. 정작 내 배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두 달여가 흘렀다. 그 사이에도 카누 생각을 놓칠 수 없던 나는 카누와 전혀 관계없는 프로젝트에 카누 신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 촬영의 카누 및 패들링 교육 전반을 공방장님이 진행해 주셨는데, 그렇게 난생처음 카누를 타 볼 수 있게 되었다. 노를 젓는 대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카누잉의 맛을 본 이상 바쁜 와중에도 빨리 내 카누를 완성해야 했다.



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일과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공방에 도착하면 신기하게도 다시 힘이 난다. 아이도 클라이언트도, 그 누구도 내게 무엇도 요청하지 않는 시간. 그 사실만으로 한껏 긴장했던 영혼이 이완된다. 선생님이 내어 주시는 차 한 잔에 숨을 고르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 아내의 배려로 집에서 빨리 나와도 공방에 도착하면 9시. 두 시간 남짓 쉴새 없이 진도를 빼야 한다. 온종일 머리를 쓴 내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 시간은 다행히도 휴식 같다.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동안 일종의 수련을 하는 기분이 든다. 겉면을 다 쌓아 올린 카누를 대패로 쉼 없이 다듬다 보면 땀이 폭포수처럼 흐른다. 잠깐 머리 전원을 끈 것만으로도 상쾌하다. 팔이 덜덜 떨리는 것 정도는 가볍게 감수할 수 있다.

2019년 5월 30일, 적당한 감 찾기 
‘우든 스트립 카누’는 긴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다. 한쪽 반을 쌓아 올린 다음 나머지 절반을 맞춰 쌓아 올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반절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지만, 나머지 반은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반대쪽과 만나는 이음새가 정확히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길면 스트립이 튀어나오고, 짦으면 공간이 남는다. 계산하고서 재단을 한 조각이지만 각도와 길이를 동시에 맞추기는 어렵다. 그래도 몇 번이고 다시 잘라 만든 조각이 정확히 맞춰 들어갈 때의 쾌감은 대단하다. 카누 제작의 묘미는 정확도에 있지만, 어림짐작에서 오는 맛도 있다. 곡선 가득한  선형을 잡아 나가는 데 완벽한 아귀만을 고집해서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적당한 감을 찾는데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2019년 9월 3일, 빛나는 유리섬유 입히기
가장 기대했던 작업은 카누에 유리섬유를 입히는 과정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 그랬다. 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반짝이는 유리 섬유를 배에 뒤덮은 다음 에폭시를 발라 밀착시킨다. 실크 같던 천이 에폭시를 만나 유리처럼 변해 배에 밀착한다. 에폭시가 건조되면서 유리섬유의 결이 부드럽게 드러나는데 그 모습이 참 곱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친 무늬가 더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던 유리섬유로 제작된 임스 체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작업을 마치고 나가는 길엔 선생님의 배를 다시 구석구석 살펴보게 된다. 얼른 배를 띄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2020년 3월 16일, 아이와 함께
호기롭게 석 달 안에 끝내겠다던 작업이 해를 넘겼다. 단계를 지날 때마다 뿌듯해하는 내게 선생님이 보이던 뜻 모를 미소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단계에는 그럴만한 이유로 시간과 노력이 들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완성까지의 디데이를 잡으려 했더니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조금 더 섬세하게 작업하자고 하신다. 뒷심이 약한 내가 끝까지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도록 완급 조절을 해주신 것 같아 고마웠다. 
카누를 기다리던 아이들도 더 묻지 않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린이와 봄이를 공방에 데리고 왔다. 얘기만 듣던 배를 드디어 보게 되어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보고 급기야 배에 돌아가면서 올라탄다. 둥실둥실 흔들어도 본다. 배를 함께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헝겊을 하나씩 쥐여 줬더니 구석구석 야무지게 먼지를 닦아낸다. 아이들의 성화를 못 이겨 선생님이 미니 카누를 만들어 주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기색이다. 


2020년 4월 8일, 공포의 물 사포질
가족 모험을 위해 카누를 만드는 거라 했지만, 사실 내 욕심이 조금 더 크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다음이나 모두 재워놓고 틈틈이 짬을 내어 작업하러 다녔지만, 절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아내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아내의 희생으로 주어진 소중한 시간에 작업하고 있으면서도 작업이 고되면 속절없이 도망치고 싶다. 대개 새로운 작업보다는 반복적인 작업을 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무한 대패질과 사포의 늪, 에폭시를 여러 차례 바르고 말리는 반복 작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힘은 어찌나 드는지.

무한 대패질과 사포 늪을 건너 여러 차례 에폭시를 바르고 말리는 반복 작업이 필요하다. 가장 지루하면서 힘도 많이 든다. 그중 최고봉은 물사포다. 물을 묻힌 사포로 배를 문지르는데 이게 그렇게 힘들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고, 힘들다고 티도 못 내겠고. 카누를 만들다 밤이 깊으면 미안한 마음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아내와 둘이 공방을 찾았다. 이날 작업이 하필 물 사포질인 탓에 아내가 옆에서 낑낑대며 함께 사포질을 도왔다. 미안하고 고마우면서 이상하게 웃음이 튀어나온다. 다음날 결국 아내는 몸살이 나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공방을 다녀온 나를 보는 눈빛이 다르다.



카누 시트를 만드는 아내 이사랑


2020년 4월 30일 카누 시트 만들기
아내와 전우애를 다질 기회가 생겼다. 바로 카누 시트 만들기. 플라스틱 끈으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들어도 되는 걸 굳이 라탄으로 제작하겠다고 해서 이 사달이 났다. 둘이서 만들면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라탄으로 만드는 카누 시트는 물사포에 버금가는 중노동이었다. 3mm 두께로 가공된 길다란 피등 껍질을 ‘팔방짜기’ 규칙에 맞춰 엮어 나가는 방식인데, 팽팽한 텐션을 유지하도록 힘껏 당겨가며 하는 작업이 보통이 아니었다. 하루에 끝내겠다는 각오로 오전부터 움직였는데,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 저녁 여덟 시까지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도 완성을 못 했다. 장비를 모두 집으로 챙겨와 남은 작업을 했다. 모양새가 영락없이 가내 수공업 공장이다. 마지막 매듭을 묶고 나니 작업에 끝이 보여 만세를 외쳤다. 아내와 나란히 하나씩 카누에 들어갈 의자를 만들었다. 첫 진수식은 꼭 단둘이서 다녀와야지. 

2020년 5월 18일 완성 카누에 의자를 결합했다. 비로소 작업이 끝이 났다. ‘공방을 언제 가야 하지?’하는 스케줄 고민은 더 하지 않아도 된다. 지친 몸을 애써 이끌고 작업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가지 말라고 보채는 아이들을 외면할 필요도 없다. 정말 기쁘면서도 슬프다. 꼬박 1년 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 카누는 내 일상이 되어 있었다. 다음 작업이 무엇일지 기대하며 달려가던 곳, 잠깐 남는 시간에 잠깐 도망치듯 다녀오던 곳도 이젠 갈일이 없어졌다. 모험을, 떠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막상 카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모험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공방장님이내 서글픈 마음을 읽으셨는지 이야기를 건네신다. “이제 우리 어디부터 가볼까요?” 공방장님 말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당분간 위성 지도로 물가만 부지런히 살펴보게 생겼다. 드디어 모험의 시작이다.



카누 공방 : KUNST MAKOON (경기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73번길 198-6)

모던 파더 | 김예찬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광고 영상, 모션 그래픽 등 영상 작업을 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PEBS’의 디렉터이자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험'을 키워드로여러가지 일을 벌리는 아빠 모험가. 김예찬 1,2,3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아빠를 닮은 세 아이가 등장하는 유튜브 <우당탕탕 삼남매 vlog>와 인스타그램 #그린봄푸름모험일지 를 운영 중이며, 가족을 다음 모험으로 이끌 카누를 만들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장인 어른과 사위가 함께 하는 아이슬란드 여행 이야기를통해 볼드저널 10호 '나이 듦이라는 변화를 해석하는 법' 컬럼에 소개되기도 했다. 카누를 만들게 되기까지 이야기는 카누 위 다섯 가족 #그린봄푸름모험일지 에서 볼 수 있다. 

  • 2020.05.22
  • Editor. 조서형
  • Writer. 김예찬
  • Photographer. 김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