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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 Issue 3. 사춘기

모두가 ‘중2병’을 앓는 사회

The Pubescent Society

많은 이가 질풍노도를 사춘기 시절 겪는 한때의 모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 2016.12.13
  • Illust 김지하
  • Words 오찬호

많은 이가 질풍노도를 사춘기 시절 겪는 한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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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단골 용어가 ‘질풍노도’다. 한자 뜻은 차치하고 질풍노도는 왜 사람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는 것일까? 이는 10대 초·중반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미완성 시기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련의 ‘몸의 반응’이 바로 질풍노도다. 극복하는 유형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롤러코스터 같은 삶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가치를 쟁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라고도 한다.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영웅적 서사의 주인공이 자신인 줄 착각하는 거다. 다른 하나는 그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상 속 청중(imaginary audience)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비록 자기 의견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어디선가’ 자신에게 갈채를 보낼 청중이 있다고 상상하는 심리적 착각이다. 한국에서는 ‘중2병’의 대표적 증세라 할 수 있다.


많은 이가 질풍노도를 사춘기 시절 겪는 한때의 모습인 줄 알았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즈음에 나타나서 적당한 때에 사라진다고 믿었다. 지금까지는 틀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20대에 접어들면 10대 시절을 ‘한때 호기를 부린 시절’로 이해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여러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사춘기 시절은 ‘그때 그 시절’ 정도로 기억만 남는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생활이란 학업을 마치면 취업에 자연스럽게 이르고 이후 성실히 살면서 10년, 20년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계획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장기 레이스에 들어선 이상 질풍노도는 필요 없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기획하는 것과 비례해(혹은 그런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일상의 불안감이 줄어드니 당연한 일이다.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중2병이 사라질까?
그런데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중2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 A(12세), B(22세), C(49세)의 경우를 통해 이해해보자. 요즘 아이들이 과거보다 빨리 사춘기를 겪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3~4년 전부터 사춘기를 겪어온 초등학교 5학년 학생 A도 그렇다. A의 부모는 조금이라도 자녀의 안정적 미래를 위해 사교육을 빨리 시키지만, 그럴수록 A는 미래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꿈이 다양해야 할 시기에 미래의 문이 협소하고 정교해지면 당연히 실패에 관한 두려움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춘기는 빨라진다. 과거 같으면 10대 중반 이후에 겪을 고민을 지금은 훨씬 일찍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이 “참 말을 안 듣는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바라는 시기가 빨라지지 않았다면, 바라는 것이 많지 않았다면 애초에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부모가 “너 나중에 뭘 하려고 이렇게 말썽이냐”고 할수록 아이들은 ‘나중’의 자신 모습이 불안하다. 그러니 육체적·정신적으로 무섭게 소용돌이친다.


그렇다면 적당히 나이가 들면 중2병은 사라질까? 이 병이 ‘중2’에 국한되려면, 청년 시기로 진입한 이들이 혼돈 없는 안정적 삶을 어느 정도는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청소년기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발버둥이라면, 청년기는 구체적 목표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었기에 사춘기가 종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청년’이라는 말의 시효가 끝났다면서 ‘후기 청소년’이란 표현이 20대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고 한다. 음주와 흡연의 자유, 그리고 투표권 부여 외에는 청소년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요즘 대학생을 ‘애’라고 표현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큰일 날 소리였는데, 그만큼 ‘부모로부터 독립이 요원해진’ 시대라는 말이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B가 그렇다. 취업의 준비 시기가 빨라지고 취업에 필요한 요건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다음 단계로 진입이 불안하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B를 포함한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많아진다고 해서 일자리 ‘바늘구멍’이 넓어질 리는 없다. ‘청년 사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재미있는 것은 B처럼 ‘잘못되면 끝장인’ 사례가 가까운 누군가의 눈에 확인될수록 A 같은 초등학생의 사교육은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성장한 A와 그 또래의 경쟁은 B보다 더욱 치열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취업 스펙은 상향 평준화되고 다수의 ‘똑똑한’ 탈락자만이 지속적으로 양상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참고로 B는 A의 큰누나다.


이 관문을 통과해 비로소 ‘어른’이라는 딱지를 붙일 만한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C가 그렇다. ‘좌불안석’, 요즘의 어른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용어가 없다. 연공서열이 사라지고 모든 것은 성과로 평가받는 곳에서 이들은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물론 버틴다고 다 버틸 수 있으면 그게 어디 현대사회인가. 무엇을 했는데도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C의 자존감은 떨어진다. ‘어른 사춘기’는 이때 등장하는데, 다 큰 어른의 중2병은 그 결이 조금 남다르게 나타난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목표 설정을 이양하는 방식이다. 자녀의 학업 성적이 자신을 ‘대리’한다는 착각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특별하다는 개인적 우화에 사로잡혀 사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상상 속 청중이 그 결과를 보고 ‘부모도’ 동반 평가해줄 거라 생각한다. 참고로 C는 A와 B의 아버지다.


다시 사춘기가 청년만의 특징이길 희망하며
사춘기가 청소년 시기에 주로 나타나는 이유는 언제나 그 시기가 어른이라는 삶의 문을 열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그 문밖이 모호할수록 질풍노도의 감정은 고조되며 때론 이해하기 불가능한 행동, 이른바 중2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이는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면서 사춘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는 생애 전반으로 보아선 분명히 ‘필요한’ 성장 과정이다. 사춘기 시절의 분노는 반대로 그 이전 시기가 순수했다는 뜻이며, 이때의 경험은 사람이 속물로 접어드는 시간을 지연시킨다. 하지만 생애 전반 ‘내내’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불안의 일상성 때문에 등장하는 사춘기를 그렇게 낭만적으로 해석할 순 없다. 물론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 치 앞이라도 좀 내다볼 수 있는 사회, 그래서 불안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줄이는 사회를 만들어갈 때 사춘기는 다시 청소년의 고유한 특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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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1978년에 태어났으며,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을 만났다. 자본주의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체념적 푸념이 사회에 만연할 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얼마나 괴기해질 수 있는지를 관찰하는 데 관심이 많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진격의 대학교>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 2016.12.13
  • Illust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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