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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s — Issue 3. 사춘기

남자가 침묵으로 말하는 이유

Why Men Speak through Silence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왜 우리는 본성과 내면의 감탄사를 잃어버리는 걸까?

  • 2017.01.03
  • Editor 최혜진
  • Illust 김지하

“한일자로 꾹 다문 입술에 감지하기 쉽지 않은 감정, 사회 안에서 자기 자리를 마련하는 대가로 열정, 의욕을 잃어버린 모습.” 책 〈혼자 있고 싶은 남자〉를 펴낸 상담심리학자 선안남이 묘사한 보통 한국 남자의 모습이다.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왜 우리는 본성과 내면의 감탄사를 잃어버리는 걸까? 

남자의 생애 주기를 관통하는 공통적 심리 상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남자는 유연성, 적응력 차원에서는 여자보다 더욱 취약합니다. 스스로를 틀에 가두고 경직된 심리 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방어 기제가 많이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커가면서 계속 오해를 받다 보니 생긴 현상인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소녀에서 여자로 되어가는 과정도 물론 쉽지 않지만, 소년에서 남자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타협해야 하는 것도 굉장히 많거든요. 현대 남성에게 요구하는 남성성, 남자다움의 틀이 굉장히 억압적이기 때문이죠.

“남자다워야 해”라는 사회 문화적 요구에 대한 말씀인가요?
네, 일례로 ‘남자애들은 좀 강하게 키워야 돼’라는 생각에 아주 이른 나이부터 아들에게는 강인함과 독립심을 요구하고, 딸은 보호하며 키우는 부모가 많습니다. 남자아이 입장에서 보면 그들도 똑같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충분히 보호받고 사랑받는 느낌, 공감받는 느낌을 느껴야만 제대로 독립할 준비를 마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에게 강인함을 요구한다는 걸 아는 소년은 자신의 약함은 숨기고 독립적인 척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사회가 소녀에게 요구하는 여자다움의 틀은 그 실체가 조금 더 명확하고, 부당한 메시지도 직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항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어요.
싸울 상대가 명확하게 보이면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눈에 보이는 운동이 생겨난 이유죠. 남자다움의 틀은 그보다 암묵적으로 모호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남자다움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가 분명하게 모이지 않죠. 미묘한 적에 대해서는 대응 방법을 찾기가 더 어려우니까요.

06-09

“남자는 단순하다, 철이 안 든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 등 남자를 단정하는 말들도 쉽게 주고받는 문화입니다.
단순하다는 게 무엇에 대해 단순한 건지 질문해보면 그런 말 속에 숨어 있는 억압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색감이 발달해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보이는 보라 계열의 색을 모두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반면 다른 사람은 색감을 보는 눈 대신 다른 영역이 발달했고요. 여자들이 남자 친구나 남편을 향해 “왜 이렇게 단순해?”라고 말할 때가 많죠. 본인이 관심 있고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것을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구분해내지 못할 때 그런 말을 합니다. 사실 그 여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너와 이걸 함께 나누고 싶어. 같이 하고 싶어”입니다. 같이 하고 싶은데 남자가 안 따라오니 답답해서 그렇게 단정해버리는 거죠. 많은 여자가 차를 볼 때 ‘국산차-외제차’로밖에 구별하지 못하잖아요? 만약 남자가 그런 여자를 향해 “넌 왜 이렇게 단순하냐?”라고 비아냥댄다면 어떨까요? 함께 차량 브랜드와 모델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남자 역시 핀잔을 듣는다고 행동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멀어질 뿐이죠.

단정 짓는 게 싫고 불편한 건 여자든 남자든 마찬가지겠죠.
많은 남자가 특히 힘들어하는 게 바로 단정 짓는 것입니다. 어릴 때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엄마가 “넌 산만해서”, “너는 덤벙대서”, “너는 예민해서” 등의 말로 ‘너는 이렇다’고 정의를 내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아이 마음에는 ‘난 그런 면만 있는 건 아닌데’라는 서운함이 남겠죠. 동시에 어릴 때부터 남자다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암묵적으로 아이에게 침투합니다. 그런 무거운 틀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게 남자아이의 독립이에요. 그래서 여자 친구나 아내가 “넌 이런 것 같아”라고 말할 때 남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불안을 느껴요. 엄마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썼는데, 또다시 ‘여자 사람’이 나를 단정 짓는 건가 싶은 거죠. 여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닫아버리고 숨는 겁니다. 자기 이야기를 했다가 그게 볼모가 되어 자신을 억압하는 틀이 만들어질까 봐 그냥 함구해버리는 거죠.

어떻게 하면 그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여자의 스트레스가 꽉 찬 쓰레기통이라면 남자의 스트레스는 닫힌 쓰레기통입니다. 꽉 찬 쓰레기통은 비우면 그만이지만 닫힌 쓰레기통은 뚜껑을 여는 일부터 관건이에요. 남녀와 상관없이 상처받은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아주 조금씩만 던지면서 돌다리를 두드려봅니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빙산의 일각'만 던져보는 거죠. 이때 듣는 사람이 과잉 반응을 하면 안 됩니다. 여자끼리는 함께 울어주거나 맞장구를 쳐주는 식으로 대화가 흘러갈 때가 많죠. 이건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안정감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남자가 경계를 하면서 스스로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건지 모른 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때는 그 이야기에 너무 빨리 반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어? 더 이야기해봐.” 정도면 충분해요. “불쌍하다, 안됐다, 힘들었겠다” 등 듣는 이의 판단이 섞인 반응은 단정 지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불안을 자극할 뿐입니다.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남자다움’의 틀 말고 또 이들을 함구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을까요?
아들이 함구하는 가정을 보면 아버지가 함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많은 엄마가 남편에게서 충족되지 않는 마음을 자녀를 통해 채우려 합니다. 한마디로 아이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어 하죠. 엄마는 끝없이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 끝에는 “나는 너를 보며 산다”는 결연한 메시지가 있어요. 그 메시지 속에는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라는 암묵적 압력이 숨어 있고요.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갑갑함을 느낍니다. 함구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차라리 저게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젊은 아버지들이 성장기에 목격한 부모님 모습이 이런 경우가 많죠. 당시엔 사회 문화적 남녀의 불평등이 지금보다 심했고, 여자의 경제력이 훨씬 약했으며, 이혼에 대한 낙인도 심했기 때문에 서로 죽일 듯 싸우면서 가정에 매여 있는 부부가 많았거든요.


“여자의 스트레스가 꽉 찬 쓰레기통이라면 남자의 스트레스는 닫힌 쓰레기통입니다. 꽉 찬 쓰레기통은 비우면 그만이지만 닫힌 쓰레기통은 뚜껑을 여는 일부터 관건이에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많은 30~40대의 젊은 아버지들이 “내가 가족을 책임진다”는 말을 하면서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있더군요. 이 마음이 건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책임감에서 찾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가정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양’에서만 찾는다면 가족을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없어져야 하는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내가 돈 벌어주는 기계냐?” 쏘아붙이면서 서운함을 느끼는 은퇴한 아버지가 많은데, 사실 그렇게 몰아간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에요. 가족과 상호작용할 때 “내가 책임질게. 그러니까 나를 따라”라는 식으로 소통했으니까요. 지금 3040 젊은 아버지들이 느끼는 책임감, 또 그로 인한 부담감의 실체를 한번 꼼꼼히 검증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여자도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예요. 물론 구조적 불평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요. 사회가 변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옛날 가부장 시대의 관념으로 자기 삶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해요.

낡은 가부장적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비단 남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독립적이던 젊은 여성도 결혼할 때만 되면 갑자기 의존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거든요.
젊은 아버지들이 낡은 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사회 문화적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지금껏 맺어온 인간관계에서 ‘책임지는 남자’가 사랑받는다는 메시지를 계속 들어온 결과예요. 결정적 순간에 여성은 의존성을 드러내고, 남자는 해결사 역할을 하는 구도죠. 여자들은 다시 그런 남자를 보면서 “잘한다” 칭찬을 하고요. 상호적인 작용이에요. 남자라서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도 없고, 여자라서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도 없어요. 남자든 여자든 사정이 좋지 않고 힘들 때는 상대방에게 생계 의무, 부양 의무, 육아 의무를 나누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남녀의 임금 차별 같은 성 불평등이 만연한 상황이라 가장인 남자가 돈을 버는 게 제일 나은 사회구조적 문제에도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고요. 

‘프렌디’가 되려는 젊은 아버지가 늘고 있습니다. ‘잘 놀아주는 아빠’, ‘가정적인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과거에 비해 가부장제의 억압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가족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전통적 의무가 현대의 이상적인 남성상 속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생계를 책임지기만 하면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과거의 가부장에 비해 요즘 아버지들이 훨씬 더 ‘심화된 기대’를 채워줘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죠. 자기표현도 잘하고, 공감 능력을 갖춰서 가족의 마음까지 보살펴야 하니까요. 이상적인 아버지상과 슈드비 사고에 포섭당해서 프렌디가 되려고 하는 거라면 그다지 건강한 마음이라고 볼 수 없어요. 실제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본인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인지, ‘좋은 아빠’라는 간판에 맞춰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인지 자기 내면을 한 번쯤 들여다보길 권합니다.

진짜 즐거워서 하는지, 의무감에 하는지 점검해보려면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까요?
‘내가 나를 어떻게 대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잘 놀아주는 아빠’, ‘나는 돈 잘 벌어오는 가장’ 등 한 가지 특징에 꽂혀 있는 상태라면 점검이 필요해요. 아빠 본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건강한 겁니다.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을 스스로 어떻게 대변하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가부장제가 부여한 경직되고 폭력적 틀에서 벗어나 고유한 개성, 섬세함, 상처를 가진 한 명의 인간으로 스스로를, 그리고 배우자와 가족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06-11

선안남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와 상담심리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 대학 및 건국대학교에서 상담자 수련을 받았다. 최근 심리 상담실의 문을 두드리는 남자 내담자가 늘면서 건강하지 못한 여성상이 여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이상으로, 건강하지 못한 남성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남성이 많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혼자 있고 싶은 남자>를 썼다. <명륜동 행복한 상담실>, <진짜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등 10여 편의 저서를 발표했다.

  • 2017.01.03
  • Editor 최혜진
  • Illust 김지하